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확산일로다.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확진 환자가 35명에 달하고, 격리 대상도 1600명을 넘어섰다. 메르스가 오랜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려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더 확산하면 전반적인 경제 심리 위축과 함께 그나마 개선 조짐을 보이는 내수 경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올해 들어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 경기마저 꺾이면 우리 경제는 재차 침체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총선 출마와 함께 사임설이 나돌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개인에게도 메르스 사태가 중요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 내수 회복 멀지 않았는데...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 1분기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0.8% 성장했다. 특히 실질 국내총소득(GNI)은 4.2% 늘면서 2009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교역조건이 개선된 덕분이다.
늘어난 소득이 저축으로 흘러든 탓에 소비가 기대만큼 늘진 않았지만, 소비 회복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김영태 한국은행 국민계정부장은 “소득 지표가 뚜렷이 개선됐다”면서 “실질 소득이 늘면 시차를 두고 민간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메르스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하면 경제 심리도 다시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방문을 잇달아 취소하고 있고, 메르스 환자가 많은 지역에선 병원과 식당, 백화점 등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를 웃돌았던 실질 GDP 성장률은 세월호 참사와 함께 2분기엔 0.5%로 급락했다. 카드 사용액이 급감하는 등 소비심리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 메르스 사태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센터의 출입 제한이 강화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메르스가 경제 회복 발목 잡나
과거에도 전염병은 경제 심리 위축과 함께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유행했던 2003년 홍콩의 경제성장률이 1분기 4.1%에서 2분기 마이너스 0.9%로 추락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최근 수출 전선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점에서 걱정이 더 크다. 수출은 오랜 내수 침체의 와중에도 그동안 한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올 들어선 지난달까지 무려 다섯 달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엔 수출액이 10% 넘게 급감했다. 엔저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대표적인 수출기업인 현대차의 경우 지난달 미국 판매가 1년 전보다 10% 넘게 줄면서 주가도 급락세를 타고 있다.
수출이 부진하다 보니 산업생산 역시 두 달째 감소하면서 실물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와중에 그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던 내수마저 꺾이면 한국 경제는 성장을 위한 두 날개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개인도 고비
최경환 경제부총리 개인적으로도 갈림길에 섰다. 최 부총리는 내년 총선 출마설과 함께 늦어도 연내 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란 얘기가 기정사실처럼 나돌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부총리 취임 후 경기부양에 올인해왔다. 가계부채 급증이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부동산 규제를 무장 해제했고, 기준금리 인하 압박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경제 심리가 다소나마 살아나고 있는 와중에 메르스 사태가 불거지면서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처지로 몰리고 있다.
다만 가계부채 부담이나 한국은행과의 갈등, 재정 악화 등의 논란에서 한발 비켜나 추가 금리인하나 추경 편성 등에 올인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 부총리 입장에서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수출과 산업생산 부진, 소비자물가의 저공비행 등으로 추가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메르스와 엔저에 직면했다”면서 정부가 추가 경기부양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