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주도의 성장인가? 부채 주도의 성장인가?'
시장은 헷갈린다. 정부가 임금 인상을 강조하면서 '소득 주도의 성장'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실상은 부채 주도의 성장에 주력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최근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소득이 늘어나지 않고선 지금의 '불황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말로 소득 주도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보다는 민간부문에서 빚을 내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살리고, 또 소비를 살리는 쪽에 더 힘을 쏟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 소득 주도의 성장이라고? 엇박자에 중구난방
최 부총리는 기업들에 임금 인상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편에선 구조개혁을 이유로 정규직 고용 유연화와 비정규직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의 노동정책을 추진한다. 소득 주도의 성장 정책과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정책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돈을 쓰기보다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소비 진작과는 거리가 멀다.
말로는 임금 인상과 소득 증대를 외치지만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재분배를 통해 가계소득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 "다만 지금처럼 부채가 늘면 이자가 함께 늘어나 소득증가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우려했다. 부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초이노믹스를 시작으로 한 경제정책도 중구난방 식이다. 취임 초 재정확대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더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연초엔 구조개혁 카드를 새로 내놨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는 힘들다. 이때 나온 것이 소득주도의 성장이다.
한 금융 계열 민간경제연구소 소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정책 코디네이션(조정)이 중요한 데 정책 간에 엇박자를 내고 있고, 중구난방 식으로 나오니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가계부채 정책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1년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관리하겠다고 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도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는 부동산이 아닌 금융정책이라는 입장에서 규제 완화에 반대 뜻을 보였다. 최 부총리가 부동산 살리기 깃발을 들기 전까지 얘기다.
이후 지난해 8월 금융위는 LTV·DTI 규제를 완화했고,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와 맞물려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금융위는 아예 총량규제에 뜻이 없음을 공식화했다. 덕분에 지난해 가계부채는 6.6%나 급증했다.
▲ (자료:하나금융경영연구소) |
◇ 결국은 손쉬운 부채 주도 성장?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이미 주택거래 비수기인 지난 2월에만 은행 가계대출은 3조 7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2월 증가액으론 최대 규모다. 3월 기준금리 인하 전의 일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빚을 내 부동산을 사거나 생활자금을 받는 가계를 막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가계부채협의체를 가동했지만, 부동산 시장 및 경제 활성화의 그늘에 가려져 가계대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손쉬운 부채 주도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엔 카드 버블, 이후 주택 버블과 자영업자 버블 등을 통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있다"며 "금리까지 낮춰가면서 가계부채를 통해 성장 동력을 유도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혹은 종료 이후 금리 인상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부채 주도의 성장은 그만큼 시스템 리스크로의 전이 가능성도 커지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 총량이 주의적 임계치에 육박해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노출되는 상황이 오면 지금의 가계부채 총량 수준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등의 노력을 통해 금융기관이나 개별 가계들이 대출과 차입을 자제 또는 억제토록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억제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아울러 가계소득 증대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고, 금전적 수단이나 금융부문을 매개로 한 경기부양정책을 지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