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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참을 수 없는 유혹과 그 유산

  • 2015.06.10(수) 15:27

[또 멍드는 금융시장]②
당국의 가격 개입, 시장 왜곡·경쟁 차단
안심전환대출은 대출 가격 왜곡 촉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말마따나 가격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해 시장을 왜곡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안심전환대출은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키운 것은 물론이고 대출 시장 전반의 가격을 변화시켰다. 정치권의 요구에 못 이겨 만든 가맹점 수수료 체계 역시 시장 상황의 변화나 협상·경쟁을 차단해 경직적인 체계로 만들어놨다. 글로벌 추세와도 어긋난다. 기술금융 역시 은행 자율보단 정부의 개입으로 양적 확대를 부추기면서 은행 부실 등의 부작용 우려를 낳고 있다. 중금리 대출도 닮은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 안심전환대출 대출 시장 왜곡

가계부채 구조를 바꾸겠다고 정부에서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은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기존 3~4%의 변동금리 대출을 2% 중반의 장기고정금리 상품으로 바꿨으니 은행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했다. 그나마 이것은 예측 가능한 후유증이었다.

이후 안심전환대출 관련 MBS(주택저당증권) 발행 과정에선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키웠다. 안심전환대출 한도가 처음 20조 원에서 갑자기 34조 원으로 대폭 늘어난 것도 원인이 됐다. 물론 당시 대내외적인 여건이 금리 상승의 주된 요인이었지만 대량의 MBS 장기물 공급은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국고채 금리의 상승은 예상치 않게 또 다른 정책 상품 보금자리론의 금리 인상을 불러왔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달에만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보금자지론 금리를 0.3%포인트나 올렸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상품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어긋나는 결과였다.

안심전환대출은 전반적인 은행 대출 금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안심전환대출 이후 3%대 주택담보대출은 사실상 실종됐다. 이미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안심전환대출 수준인 2%대로 내려오면서 은행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2%대 대출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대형은행 한 관계자는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출 정책을 펴기가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안심전환대출이 전반적인 대출 시장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자원배분의 왜곡이라는 비판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안심전환대출을 내면서 한국은행은 주택금융공사에 2000억 원을 출자했다. 결과적으론 국민 세금으로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중산층을 도왔다는 비판이다.


▲ 지난 3월 24일, 안심전환대출 시행 첫날부터 2%대 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은행 창구는 북새통이었다.



◇ 카드 가맹점 수수료, 경쟁 없는 경직된 체계

지난겨울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는 가슴을 졸여야 했다. 2012년 어렵게 봉합한 가맹점 수수료 문제가 자칫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하 요구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현대자동차가 국민카드에 자동차 복합할부금융 수수료 인하를 요구한 것이 발단이다. 금융감독원이 국민카드와 현대차 간 협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지난 2012년 금융당국은 카드업계와 신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만들었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 인하 요구 압력이 거셌다. 결국, 카드업계는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를 내렸다. 대신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는 높였다. 당국이 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시장가격에 인위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가맹점 수수료 체계는 영세 가맹점을 제외하고 수십만 개의 개별 가맹점별로 수수료를 정해놨다. 문제는 이 수수료 체계가 경쟁이나 협상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되레 협상의 여지는 사라졌다. 경쟁이나 시장원리가 개입할 틈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런 경직적인 수수료체계는 3년에 한 번 재산정하기에 그사이 금리 변화 등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없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카드 관련 수수료에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경쟁이 가능하도록 협상의 여지를 두고 있지, 우리나라처럼 경직적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 기술금융과 중금리대출은 현재 진행형

정부가 이번엔 중금리대출을 은행들에 독려하고 나섰다. 은행들도 신용등급 7~8등급의 저신용자들에게 10%대의 중금리로 대출을 해주라는 것이다.

은행에선 그동안 해보지 않은 대출이어서 그만큼 리스크가 크고, 부실 위험도 뒤따른다.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평가 모델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섣불리 나서기 힘든 시장이다.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보다 정부의 개입으로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기술금융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벤처캐피털로 고위험-고수익을 특징으로 하기에 저위험-저수익 구조의 은행들이 하기엔 쉽지 않은 시장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지난해 11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기술만 있는 곳에 기술을 담보로 대출해준다는 게 사실 기업금융의 기본과는 안 맞는다"고 언급한 것을 기술금융 실적 하위 은행의 군색한 변명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도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금융의 양적 경쟁을 지속하면서 은행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형은행 한 관계자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은행의 공적인 역할 때문인데, 일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은행의 건전경영을 해치고, 금융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린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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