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오는 29일 이사회를 열어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을 확정한다. 임금동결과 쟁의행위 금지에 대한 대우조선 노조의 확약서가 오늘(27일) 오전 산업은행에 접수되면서 예정된 순서대로 채권단의 구조조정과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원에 앞서 노조의 동의서를 받는 '선 노조 동의(자구노력) 후 지원'이라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노조 동의는 순서의 문제일 뿐 결과적으로 4조 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의 혈세와 자금이 투입되는 큰 흐름은 바뀔 것이 없다. 그래서 끓어오르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아니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 법정관리는 애초에 없었다
노조의 확약서를 먼저 받자는 얘기는 서별관회의라고 불리는 경제금융대책회의에서 나왔다. 지난 22일 대우조선 지원안을 확정하는 이 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대우조선 노조의 도덕적해이를 지적하면서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산업은행은 5일 만에 노조의 확약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노조가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정관리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금융권에선 실제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최근 부실의 주범이 된 해양플랜트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구조조정이 더욱 어렵고, 오히려 현재 예상되는 채권단의 지원 금액 이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채권단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수출입은행 등 금융회사는 선수금환급보증(RG)에 따라 발주처에 선수금을 물어줘야 한다. 해양플랜트는 일반적인 조선업과도 다르다. 탱크선 등 일반적인 배는 범용성이 있어 싼값에라도 팔 수 있지만 해양플랜트는 현재 유가를 고려하면 팔기도 힘들고 사려는 곳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결국 법정관리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고, 노조 역시 진통은 예상됐지만 확약서 제출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자율협약이든 워크아웃이든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노조 동의서를 첨부하는 것은 필수다. 이번 대우조선 지원안에도 포함된 내용이었고, 다만 순서가 바뀌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도 "이번엔 순서가 바뀐 것이지 노조 확약서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노조 확약서를 먼저 받아 최소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구조조정 의지와 원칙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선 앞으로 있을 다른 구조조정에서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4조 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지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선 면피성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게다가 4조 원대의 지원방안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면서 산업은행 책임론도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중심이어서 결국엔 혈세 지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향후 이들 기관에 대한 정부의 출자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통상적인 절차와 다르게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산업은행은 정용석 구조조정본부장을 직접 거제 옥포조선소에 보내 노조를 만나기도 했다. 통상 구조조정이 되는 회사의 CEO가 채권단에서 요구하는 현안들을 챙기는 것과는 달랐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대주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결국 4조 원 지원 수순...'밑빠진 독' 될라
하지만 역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려할 뿐 아직까지 실제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다. 금융당국 전 고위관계자는 "결국 책임을 따진다면 산업은행의 관리 부실이 50%는 될 것"이라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만큼 산은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증자와 신규 대출 및 출자전환 등을 통해 4조 원대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한다. 이날 실적발표를 하는 대우조선은 3분기에만 1조 원 수준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실사 결과도 부실 규모가 5조 원대에 이르고 부채비율도 4000%로 추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채권단의 지원안이 실행되면 증자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신규자금 지원으로 회사채 상환 등 대우조선의 숨통은 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업황이 개선되지 않고선 대우조선의 앞날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