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서비스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느새 영업점 업무를 대신해주는 무인점포가 등장했고, 비대면 실명인증도 확산하고 있다. 정맥·홍채·지문인식 등의 다양한 생체인증 방식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급속도로 진화하는 금융에 오히려 금융소비자는 어지러울 정도다. 정작 소비자들의 관심도 기대만큼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권에서도 경쟁적으로 관련 서비스와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급급해 설익은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인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는 물론이고 금융회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일 신한은행 디지털 키오스크 및 정맥인증 시연행사에 참석해 시연하고 있다. |
◇ 비대면 실명인증, 생체인증, 무인점포까지
신한은행이 지난해 가장 처음으로 비대면 실명인증과 정맥인증을 도입한 무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를 선보였다. 이후 농협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도 비대면 실명인증을 속속 도입했고, 농협과 기업은행은 각각 지문 및 홍채인증 방식도 선보였다.
우리은행도 오늘(13일) 5개 점포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한 홍채인증 ATM을 선보였다. 당분간 시범 운영하다가 오는 6월 중 무인점포를 내면서 확대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도 이달 중 비대면 실명인증을 도입하고, 홍채 및 지문 인증 방식도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1분기 중 비대면 실명인증을 도입할 예정이며, 지문인증 방식의 생체인식을 개발 중이다.
◇ 은행권 경쟁·홍보 과열에 출시 서두르다 '삐걱'
비대면 실명인증과 생체인증(바이오인증)은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모습들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헬로 아이원(i-ONE)' 앱을 내놓으면서 비대면 실명인증을 도입했는데, 금융보안원의 테스트가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출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기업은행은 금융위원회의 관련 공문이 실무 담당자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지만, 은행권에선 일정에 쫓겨 서비스를 출시하느라 빚어진 문제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기업은행은 같은 달 보도자료를 내고 시범운영을 시작한 홍채인증 ATM의 경우에도 보안 등 면밀한 점검 없이 시작했다가 여러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에선 보안 및 시스템 미비로 당장 상용화하기 힘든 수준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본점과 수지IT센터 두 곳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는 상태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보안성 검증이 아직 확실히 안 됐고, 프로그램도 개선할 필요가 있어서 아직 상용화 날짜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며 "경쟁은행보다 먼저 출시하려고 일정을 앞당기는 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홍보나 보여주기 식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은행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핀테크 업체도 무분별하게 뛰어들면서 레드오션으로 변질되고 있고, 여기엔 금융개혁과 핀테크 활성화를 부르짖는 정부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지난달 14일 홍채인증 ATM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서 시연하고 있다. |
◇ 정작 소비자는 시큰둥..."2~3년 후 대비 측면"
금융권 관계자들은 비대면 실명인증의 도입이나 생체인증 등의 새로운 서비스가 중장기적으로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맞지만 당장 전면적으로 시행하거나, 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칫 정보 유출 등의 보안 문제나 대포통장 등의 부작용만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체인증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은행권 한 담당자조차 "생체인증이 안전한 것도 맞고, 본인 확인을 하는데 편리하기도 하지만 니즈(금융정보 악용)가 있으면 뚫릴 수 있는 것이 금융"이라며 "아직은 금융거래에 있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작 소비자들의 활용도나 관심도 많지 않다. 신한은행의 디지털 키오스크는 도입 한달간(지난 연말 기준) 바이오 등록 고객이 2600여 명에 불과하다. 현재 24대가 설치된 점을 고려하면 한 대당 108명, 한 대당 하루에 3.6명에 불과한 셈이다. 영업일 기준으로 해도 5.4명으로 저조하다. 이외에 체크카드 신규 619좌, 인터넷뱅킹 345개, 입출금계좌 등 상품 신규 158좌 수준이다.
단순히 도입 초기라는 이유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정보 유출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감이 여전하고, 아직은 곳곳에 영업점포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굳이 정맥 등 생체정보를 등록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디지털 키오스크를 이용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또 다른 은행 고위 관계자도 "2~3년이 지나 은행 점포 수가 많이 줄고 나면 은행 영업점 역할을 대신할 키오스크와 생체인증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때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