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대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말하자면, 내년에 인터넷 전문은행이 도입될 예정입니다. 시장 상황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급격한 성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P2P 대출시장 발전 방안 공청회, 2015년 11월 13일)
"삼성전자가 오늘은 핀테크 업체로 참여했네요. 삼성페이의 입장에서 핀테크의 현황을 짚어주고, 제언을 해주세요." (핀테크 데모데이 전문가 좌담회, 2015년 10월 22일)
지난해 금융권에선 핀테크 관련 회의가 여러 번 열렸습니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언급들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핀테크 생태계가 더 깊고 풍부해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우리나라 핀테크 생태계는 풍부하게 만들어질지 이 두 상황을 곱씹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판단이 들기도 합니다.
◇ 핀테크의 '꽃'은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까
먼저 인터넷 전문은행의 이야기입니다. 금융당국 실무자는 공청회에서 인터넷은행이 P2P 대출의 경쟁 상대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중금리 대출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겁니다. 그는 그러면서 인터넷은행의 손을 들어주는 뉘앙스를 내비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만 명의 잠재 고객을 확보한 인터넷은행을 작은 업체가 당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들은 대형 금융사를 위협하는 존재이니까요.
인터넷은행이 금융권의 '메기'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성공을 섣불리 점칠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통신과 소셜네트워크(SNS) 분야의 '강자'가 금융권에 진출하니, 보신주의에 빠져 있던 기존 금융사가 충분히 긴장할 만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입니다. 인터넷은행이 '핀테크의 꽃'으로서 상징성이 큰 만큼,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이 두 강자가 몸집을 키울수록, 작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공산이 크다는 점입니다.
P2P 대출 업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새로운 기법의 신용평가와 기존 금융사가 하지 못했던 중금리 대출입니다. 인터넷은행 역시 같은 장점과 서비스를 내세웁니다. 소비자들은 아무래도 이름이 익숙한 업체에 쏠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P2P 대출 업체에 대한 관련 법제 마련은 미뤄둔 상황입니다.
대출 영역뿐 아니라 결제, 송금, 자산운용, 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인터넷은행은 큰 자본력을 앞세워 '좋은 기술'을 선점할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 업체와의 제휴와 인수 등이 이뤄지겠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고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인터넷은행이 핀테크 산업에서의 상징성이 큰 만큼, 열매를 독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삼성전자가 핀테크 업체 대표?
핀테크 업체들과 금융회사의 만남을 주선하는 '핀테크 데모데이'. 여기에 '핀테크 업체(?)'로 참여한 삼성전자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삼성페이는 그야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급증하며 실물카드를 휴대전화에 저장하는 방식의 '핀테크 생활'을 확산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결제 방식을 대형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독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삼성페이는 앞으로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는 이면엔 여러 편리한 결제, 송금 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은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선보일 기회를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전문가 좌담회에서 금융당국에 큰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신속하게 규제를 완화해줘, 삼성페이의 출시를 앞당길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결제 영역에서도 '강한 플레이어'를 키우는 데 일조한 겁니다.
◇ 성과 내려다 산으로 가는 창조 경제
이는 어쩌면 당장 성과를 내려고 조바심을 내는, 정부의 '창조경제'가 지닌 딜레마입니다. 스타트업이 잘 자라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번 정권에선 성과가 안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강한 플레이어를 금융권에 진출하게끔 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려 했을 수 있습니다.
은행들이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속속 만든 '핀테크 지원센터'도 성과에 집착한 단기적인 '플랜'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회사들이 돈을 들여 핀테크 업체들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이런 '인위적인' 생태계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은행들도 지원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기존 금융사를 압박하고, 또한 힘 있는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분위기를 만드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방식은 당장 성과를 낼 수 있을진 몰라도 장기적으로 풍성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도 긍정적인지는 의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창조 경제를 외치던 여당의 한 의원이 발의한 법으로 온라인 중고차 경매 스타트업이 폐업한 소식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정치권과 정부는 겉으로는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정책과 규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만드는 점은 변한 게 없어 보입니다. 이런 점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