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해 추가로 자본 확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충분한 실탄을 마련하자는 차원이다.
다만 추가로 자본을 투입하기 전에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정부 스스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수장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들을 앉히면서 오히려 부실을 더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헛발질로 일관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며,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박 대통령의 선거캠프 출신이다.
◇ 금융위 "기재부·한국은행과 자본확충 논의"
정부는 26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공식화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자본을 댈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그리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조만간 만나 자본 확충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는 이유는 앞으로 진행하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당장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비해 자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각각 14.2%, 10.0%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평균치가 14.85%라는 점에서 당장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약 업종 대출이 많아 안심할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약업종에 대한 대출을 늘려왔다. 2009년 1.9%에 불과했던 한계 대기업 대출 비중은 2014년 12.4%까지 확대했다.
◇ 싸늘한 여론…현금 출자는 야당 동의 얻어야
하지만 정부의 뜻대로 자본 확충이 순조롭게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자본 확충을 위해서는 결국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국책은행 수장들의 책임론 등 싸늘한 여론이 부담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정치권 등 관계자들의 셈법도 다 달라 의견 수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밝히면서, 국책은행의 자구노력을 언급했다. 인력과 조직 개편, 자회사 정리 등을 통해 우선 스스로 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또 "부실경영 책임은 명확히 규명해서 따져야 한다"며 "감사원에서 대대적인 감사를 했고, 감사 결과를 정리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현금 출자를 위해 한국은행이 직접 나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출자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나 야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현행 법에선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산업은행에 출자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앞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제상황실장은 이에 대해 "산업은행이 자금이 없어서 구조조정을 못하는 게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법 테두리 안에서 지원하겠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임 위원장이 자본확충 계획을 언급하며 "국회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현금 출자가 아닌 현물 출자 형태로 자본 확충이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물 출자는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 주식 등을 국책은행에 이전하는 방식인데, 당장 세금을 추가 투입하지 않아도 되고 국회의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