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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은행장의 연임=경영연속성?

  • 2017.11.22(수) 11:14

장수 CEO의 탄생 '현실적인 어려움' 많아
연임보다 경영연속성 잇는 방안 고민 지적도

9년간 웰스파고 CEO를 지낸 존 스텀프가 지난해 유령계좌 문제로 끝내 사임을 했는데요. 국회의 사임 압박에도 버티던 그가 결국 사퇴한 데는 이사회의 압박이 결정적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이사회가 스톱옵션을 회수하고 최고경영진을 재편하는 등으로 압박을 했으니까요. 위기상황에서 이사회가 운영의 묘를 발휘한 겁니다.

 

과연 국내 금융회사였다면 이사회가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CEO에 대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실제 KB사태 당시 이사회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CEO와 유착했던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금융산업은 CEO에 상당한 권력이 집중된 반면 여전히 이사회의 견제기능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장기 연임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도 강한 게 사실이고요.  최근 [韓금융 아킬레스건]이란 지배구조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심심치않게 들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장기 재임이 과연 우리 금융환경에 맞느냐는 겁니다. 중기 정도의 텀으로 운영하는게 현실적이란 얘기도 있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중도 성향의 민간경제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CEO의 연임이 경영연속성을 잇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더군요. 기업(금융회사)의 정통성을 이해하고 계승하는 CEO가 나온다면 그게 연속성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그 정통성(사실, 이렇게 얘기할만한 정통성이 국내은행들에 있는지도 의문이긴 합니다만)을 부정하는 CEO가 나온다는 건데요.

새로 부임하는 은행장이나 금융지주 CEO들은 대부분 전임 CEO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쁩니다. 최근 은행장 교체를 앞두고 우리은행 직원들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사의표명한 이광구 행장과 같은 상업은행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장이 재임시절 가장 역점을 뒀던 디지털금융 관련 영역에 있는 직원들도 그렇습니다. 당장에 돈이 되는 분야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전적으로 CEO의 의지에 좌우되는 부문인데요. 그만큼 CEO 교체에 따른 변수도 큽니다.

이 행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했던 이들 직원들은 행장이 바뀌면 당장 사업부문 자체가 없어질 것을 걱정하는 분위깁니다.

결국 잦은 CEO의 교체는 경영연속성을 해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허인 국민은행장이 21일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변화나 혁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허 행장은 "경영자가 자기 임기내 뭘 하겠다는게 굉장히 큰 무리를 줄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고객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KB'를 꼽았고, "제 임기 중에 만들겠다기보다는 KB의 철학이 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겠다"고 말하더군요. 임기와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고 이를 후임 은행장에게 잘 넘겨주고 가겠다는 겁니다. 

기자들이 원하는 답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분의 CEO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3년 혹은 2년내 '대단한 은행'으로 만들어놓겠다며 포부를 밝히곤 하니까요.

한 은행의 철학과 가치를 만들고 이를 CEO에 관계없이 이어가는 일이 우리 은행산업에선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사회가 적절히 운영의 묘를 발휘하고 장수 CEO를 탄생시킬 수 있는 정도의 건전한 지배구조를 정착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빠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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