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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금융 베트남 도전기]은행보다 항아리 믿는 기회의 땅

  • 2018.11.01(목) 15:00

[금융, 밖에서 답을 찾다]②
잦은 금융사고로 은행 못 믿어…계좌보급률 34%
"부족한 금융인프라 기회"…자체 신용평가모델 성공열쇠

어느 때보다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포화된 시장, 금리와 수수료 인하 압박 등으로 정체된 국내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비즈니스워치는 금융회사들의 해외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지를 점검하기 위해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고 있는 베트남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편집자]
 

 

[베트남 하노이=안준형 기자] 지난달 21일 찾은 베트남은 한국 금융회사에게 기회와 위기가 뒤섞인 땅이자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경제가 연 6%대 성장하면서 수도 하노이 도심의 낮은 주택가는 높은 빌딩숲으로 바뀌고 있지만 은행 계좌보유율과 도시화율은 여전히 30%대에 머물러 있다. 은행보다 금고를 더 믿을 정도로 금융수준은 낮지만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핀테크산업 발전 가능성은 어느 곳보다 높았다.

하노이에서 세번째 주재원으로 근무중인 함진식 하나은행 하노이지점장은 "처음 주재원으로 왔던 2006년 베트남은 은행의 글로벌 전략지에서 관심밖의 지역이었다"며 "2014년 초 국내 본점으로 돌아간 뒤 작년 12월 지점장으로 발령받아 다시 찾은 하노이는 이전에 없던 스카이라인이 생기는 등 도시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 "지구상에 이만큼 좋은 시장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는 33개다. 은행 10개, 금융투자 9개, 보험 9개 등이다. 이들이 베트남 점포에서 운영하는 작년 총자산은 66억600만달러(7조5280억원)으로 2016년보다 19.6% 늘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베트남으로 눈을 돌린 배경중 하나는 '국내 기업의 베트남 투자확대'다. 특히 2009년부터 가동된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공장을 계기로 협력업체들의 진출이 이어졌고 한국 금융회사들의 베트남 진출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풍부한 노동력과 내수시장, 관광자원 등 베트남의 경쟁력이 더해졌다.

김승록 베트남우리은행 법인장은 "베트남에 한국 공장이 일주일에 3~4개씩 생기고 있다"며 "한국기업 투자는 늘고 있지만 금융인프라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지구상에 이만큼 좋은 시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 "은행 대신 항아리에 돈 보관해라"

베트남이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베트남의 금융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래에셋대우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말 기준 15세 이상 베트남 인구 중 은행 계좌보유율(Banked population)은 34%에 불과하다. 주변국인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계좌보유율이 70%가 넘는다.

베트남의 낮은 계좌보유율에는 은행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1970년대 공산화 과정에서 화폐개혁이 일어났고 사유재산은 몰수됐다. 최근에도 은행에 맡겨둔 돈이 사라지는 황당한 금융 사고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호성 신한베트남은행 부법인장은 4년전 호찌민 지점장 시절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한 직원이 월급을 받아 예금을 하지 않았다. 이 직원의 아버지가 돈을 절대 은행에 예금하지 말고 집 항아리에 보관하라고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트남은 도시화율이 30%가 안될 정도로 농촌이 많다"며 "핸드폰 요금, 전기세, 수도세 등도 사람이 직접 받으러 나닌다. 굳이 계좌가 필요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척박한 금융시장은 국내 회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확산되면 계좌 보급률은 차츰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도 2020년까지 계좌 보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핀테크산업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베트남 금융당국은 지점과 법인 설립 등에 대해선 깐깐하게 규제하지만 아직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핀테크는 개방적인 입장이다. 권태두 국민은행 하노이사무소 소장은 "은행계좌보급율은 낮지만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베트남이 한국이 모르는 '디지털 세계'로 먼저 갈수도 있다"고 말했다.

◇ 현지화 성공 열쇠 '신용평가시스템'

금융기관의 핵심 인프라인 신용평가시스템도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신용평가시스템이 부족하다보니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자체가 쉽지 않다. 여기에 회계와 통계 등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진다.

이해송 금감원 하노이사무소 소장은 "금융회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 등 데이터이지만 베트남은 아직 데이터를 온전히 믿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정부는 작년 4분기 기준 베트남 은행권의 부실여신비율이 1.99%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해외에선 부실채권 규모가 10%는 넘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베트남 중앙은행은 구조조정에 실패한 오션뱅크 등 현지은행 3곳을 0원에 매각했다. 베트남에서 무리하게 금융회사를 인수합병(M&A) 하면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부실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승국 NH농협은행 하노이지점장은 "현지 신용평가사들도 금융사 부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실자산이 수면아래 많이 묻혀있는 금융사를 외국계에 매각하려다보니 딜도 잘 체결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은 국내 금융회사가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할 수 있는 열쇠로 꼽히고 있다.

작년말 베트남 외국계은행 1위에 오른 신한베트남은행은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대출을 신청할때 제출하는 재직증명서 등 서류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은행 등도 자체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중이다.

이해송 금감원 소장은 "한국기업은 너도나도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핫한 시장이지만 외국계 금융사들은 데이터 등을 신뢰할 수 없는 베트남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스타일인 한국 금융사들도 리스크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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