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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감원 해외사무소 없애고 '구글링'하자고?

  • 2018.11.15(목) 15:09

감사원 '방만운영' 지적에 홍콩사무소 폐쇄
'국내서 해외정보 수집 가능하다'는 단순 논리가 문제
미국·홍콩 당국 해외사무소 없다? "대사관 등 파견"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 금융감독원은 해외 지사들을 폐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사무소를 설치할 예정이었다가 취소하고 홍콩 사무소 폐지했다.
윤석헌 금감원장 : 네.
김용태 : 금융회사들이 해외에 활발히 진출하는 걸 도와야 할망정 취소하는 이유가 뭔가.
윤석헌 : 감사원 지적사항이다.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간 대화다. 감사원은 왜 금감원 해외사무소를 문 닫으라고 요구했을까. 작년 7월 감사원이 낸 '금감원 기관운영감사' 보고서를 보자.

"국내 금융기관의 국외지점에 대한 검사는 필요시 출장을 통해 수행하고, 국외사무소의 주요 업무인 국제 금융시장 동향 정보 수집 등은 정보통신망 발달, 국외출장 활성화 등에 따라 국내에서도 할 수 있다. 방만한 국외사무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국외근무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평소에는 국내에서 해외 동향을 파악하다 일이 생기면 출장가면 된다는 얘기다.

감사원이 금감원 해외사무소의 방만 운영을 지적한 가장 큰 근거는 '부실한 업무정보'다. 감사원은 2016년 금감원의 8개 해외사무소가 제출한 업무정보 525건을 분석한 결과, 495건이 인터넷이나 언론보도 등에 공개된 자료를 제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공개 자료 30건중 21건도 국내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였다. 감사원의 결론은 '국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사원 지적대로 국내에 앉아서 컴퓨터로 해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널리고 깔린 게 정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이다. 감사원이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정보 선택 능력은 '구글링'으로 기를 수 없다. 어떤 뉴스가 민감한지 어떤 정보가 가치가 있는지는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봐야 판단이 선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뉴스와 정보중 금감원이 525건만을 선택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업무다.

만약 감사원이 이 잣대로 언론사를 감사한다면 특파원도 방만하게 보일 것이다. 평소에는 국제부가 외신을 번역해 기사를 쓰면 되고 '사건'이 터질 때 출장가면 된다. 특파원보다 돈을 아낄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언론사는 다른 어느 조직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답은 현장에 있고 현장을 떠나면 감을 잃게 된다. 금감원과 언론사와 비교할 수 없지만 정보를 다루는 일에서만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감사원이 제기한 또 다른 지적을 보자. 작년 7월 감사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통화감독청(OCC)과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각각 런던과 뉴욕에 국외사무소를 한곳씩 두고 있다. 일본금융청(FSA)과 독일금융감독청(BaFin)은 아예 국외 사무소를 운영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 금감원은 미국과 독일,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지역에 8개 해외사무소를 운영하고 연간 예산 78억원과 인력 20명을 사용했다.

이 자료만 보면 금감원이 해외사무소를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감원 기관운영감사' 원본 보고서 아래귀퉁이에 있는 '주석'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보고서 185페이지 주석을 보면 일본과 독일 금융당국의 경우 주요 국가의 대사관 및 국제기구 등에 직원을 파견한다고 나와 있다. 일본과 독일 금융당국이 국외 사무소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 이 보고서는 싱가포르 통화감독청은 뉴욕·영국·런던에, 대만 금융위원회는 뉴욕·런던에 해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석 사항으로 달았다. 금융당국이 해외에 직원을 보내는 일이 국제적 기준으로 봐도 이상한 일은 아니란 얘기다.

돈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해외사무소가 설치된 국가와의 신뢰관계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추가로 해외사무소를 만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사무소가 운영중인 국가에서 사무소를 폐쇄하는 것은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상 국가기관인 금감원이 갑자기 떠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사무소 설치 약속을 갑자기 깬 한국 금융당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칫 괘씸죄에 걸려 민간 금융회사들이 피해를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지난 22일 국감에서 김 의원과 윤 원장의 해외사무소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김용태 : (해외사무소) 필요성은 인정하느냐?
윤석헌 : 굉장히 필요하다.
김용태 : 폐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개선해서 해외지사를 두어야 하지 않겠냐. 방향에 동의 하느냐?
윤석헌 : 동의합니다.


김용태 의원 지적대로 문제가 있다면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금감원 홍콩사무소 철수는 사실상 확정됐다. 현재 홍콩사무소는 한 직원이 남아 짐을 싸고 있다. 금감원은 홍콩사무소 철수를 가정하고 내년 예산안을 짰다. 내년부터 금감원은 세계금융 중심지인 홍콩의 금융 정보를 '구글링'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여의도 금융감독원./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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