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카드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던 한앤컴퍼니가 탈락했다. 대표이사에 대한 탈세 수사와 파킹딜 의혹 등으로 향후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자 잠잠해졌던 카드업계 재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앤컴퍼니에 이어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가 된 때문이다.
◇ 파격 인수가격 제시했지만 탈세·파킹딜 논란 넘지 못했다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던 한앤컴퍼니는 다 잡은 대어를 놓쳤다. 한앤컴퍼니는 인수후보자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제시했었다.
인수전 초기 롯데지주 측은 롯데카드의 전체 가치를 약 1조5000억원 수준으로 기대했다. 매각대상인 지분 80%의 가치는 1조2000억원이라는 얘기다.
인수전에 가장 먼저 의욕적으로 나섰던 하나금융지주는 인수가격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금융은 롯데카드 인수 자금으로 '약 1조원이 준비됐다'는 입장을 보였다.
MBK파트너스와 우리은행은 롯데가 기대한 수준인 1조2000억원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컴퍼니는 인수희망가로 1조4400억원 가량을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카드 전체 몸값을 1조8000억원 수준으로 본 것이다. 롯데 측이 기대한 가격보다 더 많이 제시한 곳이 나타나면서 경쟁사들이 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 한앤컴퍼니지만 결국 '대주주 적격성 우려'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앤컴퍼니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발표 직후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의 탈세 수사 소식이 시장에 전해졌다.
최근 한 대표는 KT 새노조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과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한앤컴퍼니가 온라인 광고 대행사인 엔서치마케팅을 KT 종속회사인 나스미디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시가보다 높게 몸값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이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혐의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 대주주가 되려면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파킹딜 논란도 있었다. 롯데는 그동안 카드사업에 의욕을 보여왔다.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설계도 촘촘하다. 그럼에도 매각에 나선 것은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공정거래법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카드업계에서는 롯데지주가 사모펀드에 롯데카드 지분을 맡겨두고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다시 재매입하거나 지주회사 밖의 회사를 통해 지분을 되사오는 일명 '파킹딜'을 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탈세 수사와 파킹딜 논란 등으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현미경 수준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롯데는 결국 우선협상 대상자를 교체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롯데는 오는 10월까지 롯데카드를 매각해야 한다. 기한을 어길 경우 예상되는 과징금 수준이 1000억원이 넘는다. 한앤컴퍼니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줄 여유가 없다.
◇ MBK파트너스 전면에 나섰지만 우리은행 주목
바통을 넘겨받은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은 롯데카드 지분을 'MBK파트너스 60%-우리은행 20%-롯데그룹 20%' 보유하는 안을 제시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전면에 나선 MBK보다는 우리은행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우리은행이 롯데카드를 확실하게 인수하면 우리카드와 함께 카드업계 판도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올해초 "2~3년내에 1등 금융그룹으로 올라서겠다"며 "발빠른 M&A에서 찾겠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구조상 롯데카드는 다시 나오기 힘든 M&A 매물이라는 평가다. 우리은행이 비은행 부문을 키워 1등 금융그룹으로 가는 초석을 마련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카드의 신용카드 이용실적 점유율은 8.49%로 7개 전업카드사 중 6위다. 매물로 나온 롯데카드는 11.04%로 5위다. 두 회사의 점유율을 단순합산할 경우 19.53%로 삼성카드를 제치고 업계 2위가 된다. 1위 신한카드와의 차이도 2.5%포인트에 불과해 향후 업계 1위도 노릴 수 있다.
점유율 뿐만 아니라 시스템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다.
우리카드는 자체결제망이 없이 비씨카드 결제망을 빌려서 쓴다. 우리카드는 비씨카드의 지분 7.65%를 가지고 있는 2대주주다.
이에 따라 가맹점 관리와 운영업무도 비씨카드에 위임하고 있다. 약 3조원에 달하는 비씨카드의 매입업무수익 중 상당부분이 우리카드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카드가 롯데카드와 합병할 경우 어떤 결제망을 쓸 것인지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큰 폭의 비용절감이 이뤄질 수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이 어렵지만 카드사업은 다른 업권과 많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매물"이라며 "롯데카드 매각은 카드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