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키움뱅크와 토스뱅크가 각각 혁신성, 자본력 부족을 이유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지 못하면서 업계에선 혁신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돈을 빌려줄때 떼일 가능성까지 따지는 은행이 과연 안정적인 동시에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발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최근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R&D센터 본부장(사진)과 인터뷰는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는 혁신이란 '알고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남이 쉽게 흉내낸다면 혁신이 아닌,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국내 금융권엔 개선은 있지만 아직 혁신은 없다.
장 본부장은 새로운 콘텐츠시장 흐름인 '구독경제'에 기반한 금융모델에 주목하고 있었고, 정답이 없어 예술과 같은 '생활·금융 결합 플랫폼' 구축을 고민하고 있었다.
- 키움뱅크가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지 못했다. 혁신이란 주관적이다. 혁신이란 뭐라 생각하나
▲ 혁신이란 주관적인 게 맞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은행 안팎에서 보는 혁신도 다르다. 혁신?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기능 아닐까. 예컨대 어떤 제품을 만들었을 때 남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면 혁신이 아니다. 개선이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가진 기능은 알지만 쉽게 못따라 간다. 금융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신규 서비스들은 쉽게 따라갈 수 있다. 그것은 혁신이라기 보다 프로세스 개선이다.
- 최근 해외에서 주목하는 혁신 사례가 있나
▲ 구독경제다. 과거 광고 중심이었던 뉴욕타임스가 완전히 디지털로 바뀌었다. 온라인에서 돈을 내고 뉴욕타임스를 보는 독자가 상당히 늘고 있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돈을 내고 뉴스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터 질이 높으면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가 IT기업과 다르지 않게 가고 있다. 구독경제가 활성화되다보니 구독경제에 기반을 둔 금융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 금융권에 구독경제를 어떻게 적용가능한가
▲ 금융은 돈이 흐르는 쪽엔 늘 관심이 많다. 고객이 구독료를 내는 채널이 은행이 될 수도 있다. 인도에 공유경제가 나오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인도형 우버로 불리는 '올라'가 있다. 올라는 기사들의 운행 기록을 은행에 넘기고 은행은 이를 통해 맞춤형 대출 상품을 만든다. 공유경제를 통해 데이터가 모이고 데이터 교류 통해 금융권에도 활용모델이 생긴 것이다. 특히 2030세대가 구독경제에 열광하고 있다.
- 요즘은 은행들이 광고모델로 아이돌을 기용하는 등 20대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엔 돈없는 20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재밌는 현상이다. 여전히 캐시는 노년층이 많고 실제 은행 매출의 상당 부분도 지점에서 나온다. 온라인에서 매출이 조금밖에 나지 않지만 2030세대의 디지털 수용성은 높다. 2030세대를 무시하고 디지털플랫폼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고령층은 앱을 잘 쓰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디지털로 가면서 2030세대 가치가 커졌다.
- 은행 디지털 전략을 짤때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 매출 기여도는 중장년층인데 디지털 쪽은 노년층이 불편해한다
▲ 자연스럽게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두개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하면 다른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2030세대가 은행 거래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2030이 언젠간 중장년층이 될텐데 지금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 은행 입사 전에 인터넷뱅킹을 쓰면서 무엇이 불편했나(그는 삼성전자·IBM·SK 등에서 근무하다 2017년 신한은행으로 영입됐다.)
▲ 당연히 공인인증서다. 1년마다 갱신해야하고 갱신할 때마다 PC에 들어가고 다시 모바일로 보내고 다른 은행가면 또 등록하는 등 불편했다. 한번이지만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요즘엔 신한은행 앱 '쏠'도 페이스아이디(Face ID, 얼굴인식) 등을 통해 바로 들어가진다. 다른 은행도 연동이 돼 두번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관문 절차가 간단해졌다고 혁신은 아니다. 다른 은행도 똑같이 바뀌고 있다. 숙제는 은행 앱이 어떤 기능을 제공하느냐다.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문제다. 은행 앱이 이체 등 기본적인 기능 외에 무엇을 더 제공할 수 있나. 국내외 모든 은행이 고민하고 있다.
- 신한은행의 전략은
▲ 생활과 금융을 결합한 생활금융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연구를 하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정답이 없으니 일종의 아트다. 끊임없이 시도한다. 휴리스틱(heuristic, 시행착오를 통한 발견)하는 거다. 어디서 터질 지 모른다. 어떤 음악, 영화가 성공할지 모르는 것과 같다. 어떤 지점을 터치하면 전염성이 높아진다. 그게 안 되면 사그라진다. 신한은행은 암웨이, 다방, 신세계면세점 등 외부 플랫폼과 연동해 쏠의 표면적을 넓히고 있다.
- 은행 앱이 편리하고 쉬워지지만 안정성은 담보해야한다.
▲ 보안에 있어 금융사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구글이 해킹된 적이 있나. 구글이 은행은 아니지만 해킹을 못한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해킹된다. 은행이냐 아니냐를 떠나 중요한 것은 보안에 대한 기술력이다. 우린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물론 금융기관은 100번 잘해도 1번 틀리면 문제가 생긴다. 조심하고 있다.
- 오픈뱅킹 등을 통해 은행이 외부와 접촉할 일이 생기고 있다.
▲ 오픈뱅킹으로 가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안갈 수 없다. 오픈뱅킹을 하면 은행 내부와 외부의 회색지대가 생긴다. 은행의 코어뱅킹은 외부와 연결되지 않게 분리하고 그 외 은행 정보를 외부에 제공해야 한다. 은행 내부는 튼튼하게 만들면서 외부 인터페이스에 잘 열어주는 것도 일종의 아트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 올해 하반기 계획은
▲ 지난해 디지털플랫폼을 만들었다면 올해는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로보어드바이저 브랜드 '쏠리치'가 6월부터 박보검을 모델로 기용하며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 로보어드바이저 엔진을 내재화했다. 고객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주식 하락기땐 잘 버티고 상승기땐 잘 올라갈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워준다. 고객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은 어떤가
▲ 작년말 시장이 안좋았을 때도 버텼다. 10%대 이상의 마이너스 수익률이 날때 쏠리치는 0%대로 선방했다. 0%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버티는 것에 의미가 있다. 최근에도 5% 수익률을 내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데이터를 받은 만큼만 생각하는데 데이터를 모두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신한은행 전문가의 뷰를 집어넣었다. 전문가가 펀드 풀을 선정하면 그 안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를 고른다. 하이브리드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