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승진한 직원들은 모두 한달씩 쉬어요?"
2016년 국내 10대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한화그룹이 '안식월 휴가제도' 도입을 발표한 이후 김흥수 한화건설 인사운영팀 차장이 숱하게 받았던 질문이다. 도입 초반엔 직원들이, 제도도입이 소문이 난 뒤엔 회사 밖에서 질문이 계속됐다. 그만큼 당시 직장인에게 '한달의 휴식'은 생소했다.
안식월은 과장~상무보 승진때 1개월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제도다. 한화건설은 2017년부터 도입해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설마 진짜 하겠어?'라는 의심 속에서도 안식월 사용률은 누적 90%를 넘겼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휴가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바꿔나간 영향이다.
김흥수 차장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는 게 혁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일할 땐 일하고 쉴땐 쉴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재충전-업무 집중력-로열티-생산성 '선순환'
인터뷰를 위해 찾은 한화건설 본사 직원들은 대부분 산뜻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김흥수 차장은 "편한 복장, 회의 등을 자제하고 업무에 집중하는 불꽃타임(오전 9시 반~11시), 퇴근 시간에 컴퓨터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off) 제도 등 좀 더 편안하면서도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화건설은 '잘 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식기에 맛있는 음식을 담기 위해선 먼저 식기를 비워내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업무에 집중하려면 충분한 휴식을 갖는 '리프레시(refresh)'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룹 전사적으로 시행하는 '안식월 제도'가 한화건설의 조직문화를 한층 유연하게 만들었다.
김 차장은 "승진했으니 새로 맡은 직책에 계획도 세우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취지로 그룹 차원에서 만든 제도”라며 "단순히 '쉰다'의 개념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재충전'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사 직원에게 한달의 긴 휴가를 주는 것은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건설업은 공사 기간 등 변수가 많고 현장과 해외 근무자들은 대체 인력이 부족해 사실상 충분한 휴가를 쓰기 어려운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직원들은 안식월 사용을 주저했다. 도입 초반엔 '진짜 한달이나 휴가를 써도 되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김 차장은 전했다.
그는 "처음엔 직원들끼리 '휴가 다녀오면 책상 없어지는거 아니냐' 등의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을 정도로 반신반의했다"며 "특히 결재 등의 업무가 많은 임원들은 오래 쉬는 걸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안착을 위해 대상자 모두 휴가계획서를 제출하게 했고 임원 승진자들 먼저 휴가를 보내 직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며 "해외 근무자의 경우 국내에 복귀하는 시점에 쓰도록 양해를 구하는 등 모든 직원이 예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초반 걱정과 달리 직원들은 안식월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전국 일주를 하거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도보로 다녀오는 등 평소 하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는 직원도 생겼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 한달살기를 하거나 한달 짜리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인으로서 누구나 꿈꾸던 일들을 현실로 마주하는 직원들이 늘었고 안식월 제도는 회사 문화로 정착됐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변화였다.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돼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김 차장은 "안식월 제도 도입 후 승진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기고 복귀한 직원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직원들도 노하우가 생겨서 승진을 준비하며 안식월 계획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사내에서 좋은 변화의 흐름이 포착되자 회사도 제도를 더욱 독려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로열티가 높아질수록 회사 업무 증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생산성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워라밸' 중요…조직문화도 세대교체
한화건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흐름에 맞춰 특히 젊은 직원을 타깃으로 조직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김흥수 차장은 "시대적인 분위기가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고 현재 조직 구성원의 60% 이상이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 N세대(네트워크 세대)"라며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자율적이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유연한 조직문화로 변화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젊은 조직원들이 원하는 복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게 이달부터 도입한 어학지원 제도다. 해외 현장 등 어학이 필요한 직무에 있거나 발령을 앞둔 직원에게 300만원 정도를 지원해 안식월과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김 차장은 "이전에도 어학지원 제도가 있었지만 안식월과 함께 이용하면 공간의 제한이 사라져 한달 정도 지원금을 받으며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게 됐다"며 "자기개발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 밖에도 자신의 상황에 맞춰 오전 7~9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출근시간을 선택하고 정해진 근무시간 이후에 자유롭게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도 시행하고 있다. 점심시간도 한시간 반으로 늘려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김 차장은 "예전엔 근속 연수가 높은 사람을 위주로 복리후생 제도를 만들었는데, 최근엔 타깃층을 젊은층으로 옮기고 있다"며 "50대 등이 주로 이용하는 자녀 학자금대출 대신 자녀입학 축하금, 외조부모 경조휴가(3일)를 신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흥수 차장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사실상 퇴근 시간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야근이 빈번했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회사를 고르는 기준에서 '워라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만큼 충분히 쉬고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유인을 만들어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제도들이 당장 가시적으로 생산성 지표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직원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며 "직원의 만족도가 회사의 경쟁력인데 회사 미래의 큰 기둥이 될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시대에 맞는 복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 차장은 "혁신은 생각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보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유연한 조직문화를 포인트로 생각하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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