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무해지 환급형 보험상품이 출시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한 보험료로 보험가입이 가능해졌다. 수익악화를 겪고 있는 보험사들이 '낮은 보험료'를 무기로 가격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사이다보험]무해지 환급형①보험료가 더 저렴한 이유)
그러나 보험료가 낮다고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품일까?
보험사와 소비자는 시소게임 하듯 한쪽이 유리하면 한쪽은 불리하다. 수익악화를 겪고 있는 보험사들이 매출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줄이면서까지 무해지 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것은 왜일까?
보험사가 말하는 '더 저렴한 보험료'에 숨겨진 내용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아보자.
무해지 상품은 일반 보험상품 대비 보험료가 20~30% 저렴한 대신 보험료를 납입하는 동안 보험을 해지할 경우 해지환급금이 없는 상품이다. 현재 100% 무해지 환급형을 비롯해 50%형, 10%형, 슬라이드형, 그리고 최근에는 갱신형 담보를 탑재한 상품들까지 선보이고 있다.
* 무해지 환급형(100%) : 보험료 완납시 표준형(무해지가 아닌 상품) 대비 환급률 동일
* 50%형 무해지 환급형 : 완납시점 표준형 대비 환급률 50% 수준
* 10%형 무해지 환급형 : 완납시점 표준형 대비 환급률 10% 수준. 무해지 상품 중 보험료 가장 저렴.
* 100% 무해지 슬라이드형 : 완납시점 이후부터 환급률 매년 5%씩 체증. 납입완료 후 20년 이후에 표준형과 환급률이 동일해짐.
* 50% 무해지 슬라이드형 : 완납시점 이후 환급률이 매년 5%씩 체증, 납입완료 후 10년간 늘어나고 표준형 대비 환급률 50% 수준
* 무해지(주계약)+갱신형(주요특약) : 완납시점 이후 표준형과 환급률 동일. 납입기간 중 특약 갱신에 따른 보험료 인상요인. 갱신기간(10년, 15년 갱신 등)이 길수록 보험료 인상률 커. 가입 초기 보험료는 100% 무해지 환급형 대비 20~30% 가량 저렴.
무해지 상품은 납입 중간에 해지할 경우 보험가입자에게 손해다. 하지만 필요한 보장을 이전 상품보다 더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는 만큼 '보험유지만 가능하다면' 훨씬 합리적인 상품이다.
문제는 '해지시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험가입자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가입이 이뤄지고 있느냐다.
◇ 불완전판매, 해지시 대량 민원유발 우려
40세에 중증치매를 보장하는 치매보험에 가입한 A씨는 매달 9만4900원을 내야하는 표준형(무해지가 아닌 상품) 대신 7만4800원을 내는 무해지 환급형 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나 19년 11개월간 보험료를 납입하다 보험을 해지했다면 그가 낸 보험료 1787만7200원 중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그러나 1개월분을 더 내고 20년을 채운 시점에서 해지했다면 낸 보험료 1795만2000원 보다 많은 2294만7000원을 돌려받게 된다. 낸 보험료에 더해 약 500만원의 수익을 얻은 셈이다.
A씨가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보험료 납입완료 한달전에 보험가입을 해지했다면 A씨는 억울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혹은 가입당시 A씨가 상품에 대해 정확히 설명 받지 못하는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면 이는 민원이나 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실제 업계 내에서도 무해지 상품에 대해 '저렴한 보험료'만을 강조하다 불완전판매 등으로 민원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보험업계 상품개발업무 관계자는 "무해지 상품은 해지했을 때 환급금이 없는 상품인데 이를 '시장과 소비자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고 가입했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며 "해지가 늘어나는 시점에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즉 대량 민원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험료 납입이 완료된 이후 환급금이 크게 늘어나는 시점의 해지율 상승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무해지 상품은 해지율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해지 상품이 판매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보험사가 예측한 해지율보다 실제 해지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인식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환급금이 크게 늘어나는 납입완료 시점의 해지율에 대해서는 고심해야 한다"며 "잘 유지하던 고객도 납입완료 이후 환급률이 120~130%로 늘어날 경우 해지율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A씨가 20년간 납입을 완료한 시점에 받게 될 환급금은 납입원금(1795만2000원)의 127.8%(2294만7000원), 이후 10년을 더 유지한 후 해지시 받게 될 환급금은 160%(2881만3000원)에 달한다.
계약을 유지한 고객이 보험사의 예상보다 많고, 환급금이 높아지는 시기에 해지가 몰릴 경우 보험사가 지게 될 부담이 매우 커지는 것이다. 무해지 환급형 보험상품이 판매된 것은 생보사가 2015년, 손보사가 2016년부터이며 지난 3월 기준 총 405만2000건이 판매됐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최근 이 같은 환급금을 줄이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0%형인데 이는 환급금이 표준형 대비 10%밖에 되지 않는다.
유병자를 대상으로 한 '간편보험'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높은 만큼 무해지형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추가로 10%형을 선택할 경우 무해지형에 비해서도 최대 40% 가까이 보험료를 절약할 수 있다. 가입시점에서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가입 후 해지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 무해지 갱신형, '더 낮은 보험료'라 쓰고 '해지율 관리'로 읽는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생명보험 상품의 5년 이후(61회차) 유지율은 52.4%다. 생명보험사에 가입한 사람 중 절반은 5년 안에 보험가입을 해지한다는 얘기다. 상품종류에 따라서는 5년 유지율이 40%가 채 되지 않는 상품도 있다.
손해보험 상품 역시 통상 5년후 유지율이 50% 안팎을 기록한다. 무해지 상품을 가입한 고객들의 절반도 보험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5년이 지난 이후 보험 유지율은 오히려 큰 변동을 보이지 않고 유지된다. 또한 연도별로 보면 유지율은 40%대에서 50%대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납입완료 시점에 보험사들의 손실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가장 최근에 나온 갱신형 담보를 탑재한 무해지 상품은 환급금을 줄이는데서 더 나아가 해지율 관리 차원에서 내놓은 상품이란 분석도 나온다.
해지시 환급금을 없애 보험료를 낮춘 구조는 동일한데 주요 담보들이 모두 10년, 15년 갱신형으로 돼 있다. 진단금이 큰 주요담보들을 갱신형으로 돌린 만큼 초기 보험료는 일반 무해지 상품 대비 30% 가까이 낮아진다. 그러나 이후 10년, 15년 시점의 보험료 상승폭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갱신을 갱신으로 바꾸면 초기 10년은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해 지는데 소비자들은 당장 더 저렴한 보험을 찾기 때문에 갱신형에 가입할 유인이 크다"며 "갱신기간이 10년, 15년일 경우 보험료가 크게 뛸 수 있는데 납입완료 이전에 갱신이 이뤄지기 때문에 갱신시점에 해지가 늘어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사실상 보험사가 무해지 상품의 환급금이 높아질 경우 발생할 손실을 대비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해지율 관리 차원의 방안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 낮은 보험료'를 강조하는 상품들이 실상 보험사의 리스크를 줄이는 상품이란 것이다.
무해지 상품은 저금리, 경기상황 악화라는 환경을 반영해 가격을 낮춘 좋은 취지의 상품이다. 그러나 그안에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실제 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 오거나, 소비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기억이 안난다' 식의 대응만으로는 더이상 보호받을 수 없는 점이다. 단순히 '싸다', '좋다'라는 말들에 혹해 보험을 가입하는 시대는 지났다.
보험상품은 금융상품 가운데서도 소비자와 금융사간 정보 비대칭성이 가장 큰 상품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보험상품에 숨겨진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입한 상품이 어떤 상품인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무엇을 위해 가입하는지 계속해서 점검하고 따져봐야 한다.
당신의 보험은 지금 안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