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법 제정 60년 만에 재보험업의 위상이 높아진다. 금융당국이 보험업법상 손해보험의 한 종목으로 취급해온 재보험을 별도 업(業)으로 분리하고 그에 맞는 별도 규제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재보험은 해외에서는 생명보험, 손해보험과 같이 별도 업으로 구분해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자동차보험처럼 손해보험이 영위하는 보험상품 중 하나로 취급돼왔다.
보험사를 대상으로 BtoB(기업간 거래)로 영업하는 재보험사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손해보험업과 동일하게 BtoC(기업-소비자간 거래) 영업 규제를 적용하면서 60년간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보험 자본건전성 선진화 추진단' 제5차 회의를 열고 재보험업 육성을 위한 제도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이달 중으로 재보험업 실무작업반(TF)을 구성해 재보험업 개편에 따른 허가요건, 영업행위 규제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재보험업을 손해보험업에서 분리 생명보험, 손해보험과 같은 위상으로 정립해 독립적으로 취급하고, 그동안 생·손보업 허가만으로 별도 허가 없이 재보험 영위가 가능했던 허가간주제 폐지도 검토한다. 일정기간동안 영업행위를 하지 않을 경우 허가를 회수하는 다른 금융업 규제와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기존 보험사들은 재보험업 영위의사와 영업요건 충족 여부를 확인해 기존과 동일하게 진행하되, 신규 보험업 진출자는 재보험업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재보험 종목도 ▲생명보험재보험 ▲손해보험재보험 ▲제3보험재보험 등 3종목으로 세분화하고 각각에 필요한 최저자본금 요건을 3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완화한다. 생명·손해·제3보험에 대한 재보험을 모두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같이 최저자본금 300억원을 충족해야 한다.
자본금 요건을 낮춘만큼 '생보재보험사'처럼 특화재보험사 출현도 기대되고 있다. 일부 자본금 요건이 낮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자본금 규모에 맞는 수재가 가능하도록 RBC(지급여력비율) 규제를 적용하는 만큼 리스크 관리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실무회의에서 심층적인 내용을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번 제도개편의 배경에는 당국이 보험사의 부채 구조조정 방안으로 도입을 추진 중인 '공동재보험'이 있다. 과거 판매한 고금리 상품으로 인한 부채부담을 재보험을 통해 이전할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재보험 규제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보험이 손보업 하위 종목으로 들어있어 보험업법상 재보험 관련 규정을 찾아보기 어렵고, 영업행위규제를 비롯해 재보험에는 적용하지 않는 규제들이 따로 명시되지 않아 감독자가 바뀔 때마다 혼란을 빚어왔다.
예를 들어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판매하려고 하는 보험상품에 대한 기초서류를 작성하고 당국에 제출해야 하지만 재보험사는 기초서류를 내지 않고 있다. 기초서류는 표준화된 상품에 적용하는 상품설명서인데, 재보험계약은 보험사와 재보험사간 1:1로 이뤄지는 개별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보험사가 기초서류 제출 규제에서 제외된다는 명시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보험은 관행상 규제를 달리 적용함에도 규제가 명시되지 않아 감독자가 바뀔 때마다 혼란이 있었다"면서 "사실상 제도 개선이 늦은 측면이 있는데 손해보험업 규제 중 재보험업에 적용할 필요가 없는 규제를 명시적으로 적용배제해 혼란을 줄이고 재보험에는 맞지 않던 영업규제 완화와 재보험 특성을 반영한 차등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재보험업계가 법적 위상 정립으로 이번 제도개편을 환영하는 반면 재보험 관련 별도 규제를 받지 않던 보험사들은 추가적인 규제가 생길까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한두명이 재보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보험사들의 경우 회계처리 및 영업요건 규제에 따라 재보험 담당 인력이나 조직적인 면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큰 틀만 결정된 만큼 당장 향후 영향은 예측이 쉽지 않다"면서 "다만 업계 전체적으로 재보험 관련 규제가 더해지는 부분이 생기거나 기존에 하던 부분들에 변화가 생길까 우려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