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언택트 산업이 급부상한 반면 전통산업은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앞세워 금융산업의 빗장을 풀면서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에 맞서 기존 금융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반면 보험산업은 여전히 면대면(face to face) 영업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국내 생명보험의 대면모집 비중은 98.5%에 달했다. 100명 중 1명만 온라인으로 보험상품에 가입한다는 얘기다. 자동차보험 위주로 온라인 가입이 늘고 있는 손해보험도 대면모집 비중이 여전히 87%를 웃돈다. 신규 고객층인 2030세대는 이미 비대면에 익숙한데도 보험사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보험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전 세계 보험왕 모임인 백만달러 원탁회의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협회'는 매년 연차총회 및 글로벌 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비대면 방식을 도입했다.
'2020 Virtual Event'라는 타이틀은 단 이번 행사에선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메인 이벤트를 진행했고, 8월 한 달간 각종 강의를 비롯해 총 200여 개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시간대를 5개로 나눠 방송을 송출하고, 한국어는 물론 영어, 광둥어, 그리스어, 힌디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등 13개 언어로 콘텐츠를 번역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가피하게 비대면 방식을 도입했지만 이에 따른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기존엔 세계 각지에서 오프라인으로 행사가 열렸던 탓에 비용과 시간의 제약이 많았는데 이젠 보다 다양하게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오랜 역사를 가진 보험설계사들의 최대 행사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즈니스워치는 이번 행사의 연사로 참여한 토니 고든(Tony Gordon·사진) 전 MDRT 협회장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보험설계사와 보험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고든 전 협회장은 전세계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생명보험업계 49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41년간 MDRT 협회 멤버로 활약했다. MDRT 협회는 생명보험 판매분야 명예의 전당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협회다. 연간 1억 8000만원 이상의 보험료나 7300만원 이상의 수수료 실적을 올려야 가입 조건이 주어진다.
기준 실적의 6배를 웃돌면 TOT(Top of the Table) 자격이 주어지는데 고든 전 협회장은 40년간 TOT에 오른 인물이다. MDRT 협회장과 TOT 의장을 역임했고 지난 1999년 MDRT가 선정한 뛰어난 12명의 보험설계사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은퇴 후 멘토링과 강연을 통해 후배 설계사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바는 무얼까? 이번 팬데믹은 그가 겪은 5번째 세계적 불황이다. 처음 보험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영국에선 정전이 잦았다. 이 때문에 고객들을 만날 때면 늘 서류가방에 양초를 넣고 다녔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있는 현 상황에서 당시 양초 같은 대비책이 있을까.
지금은 불확실성이 가득하지만 이 상황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망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뉴노멀(New Normal)에 이르게 된다.
- 코로나19로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있는데 보험설계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 모든 보험재정전문가들은 일상 업무 중 추진력을 얻는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요소로 추진력이 멈추게 되면 밀고나갈 동기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변화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될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과 동일한 시간과 수준으로 고객들과 연락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달라진 환경이 보험산업에 미친 영향은
▲ 코로나19는 보험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온라인 회의 급증이 가장 두드러진다. 팬데믹 초기에 고객들은 투자보다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고객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 도울 수 있어야 하며, 건강과 관심사를 매번 파악해야 한다. 불행 가운데 희망이 있다면 코로나19는 고객들이 온라인 만남에 적응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온라인 만남을 멈춰선 안 된다. 일부 설계사들은 온라인 만남을 통해 예전보다 고객을 만나는데 투자하는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설계사와 고객 모두에게 좋은(win-win decision) 결정이다.
- 코로나19가 영국 보험시장에 미친 변화는
▲ 설계사들이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기꺼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적응하려 했는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선택이 맞을지 두려워만 했는지 설계사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확인했다. 코로나19는 기존 몇몇 트렌드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 수수료를 넘어선 맞춤형 개별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
- 고객과 대면영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해법은
▲ 코로나19 이전처럼 여전히 많은 고객들은 전화 연락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에만 매몰돼 기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고객들은 손주들과 영상통화(FaceTime) 방법을 알게 됐고 줌(Zoom)을 이용해 친구들을 만나며, 원격진료도 받는다. 고객들은 이제 자신의 설계사들과 줌으로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 포스트 코로나시대 보험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 코로나가 지난 이후에도 변화는 이어질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업무에 차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재택근무가 더 일반화될 것으로 본다. 보험사에 소속된 설계사가 많은 나라에선 속도가 더디겠지만 보험사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 업무 전반의 디지털화와 수수료 기반 서비스 등 설계사의 독립이 가속화할 것이다.
- 언택트라는 큰 변화의 와중에 보험설계사의 역할은
▲ 위기의 순간에 설계사들의 역할은 고객들과 신뢰를 쌓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큰 과제는 신뢰인데,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추천을 통해 잠재 고객을 만나는 것이다. 즉 고객들과 연결 및 관계 형성을 통해 위험이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예상하지 못한 비상사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설계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시기이지만 성공에 이르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으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스스로에게 방향을 제시할 목표를 설정하고 그곳까지 가는데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한다. 용기와 자기 단련이 있다면 매일, 매주, 매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