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에선 한동안 잊혔던 한국씨티은행 철수설이 다시 불거지며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모두 외신을 통해 흘러나온 얘기여서 아직 뚜렷하게 정해진 내용은 없는데요.
지난달 말 블룸버그통신을 통해 씨티은행의 아시아 일부 지역 철수 검토 소식이 들린 후 이달 들어선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제인 프레이저 신임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소매은행 중단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씨티은행의 국내 업력은 50년이 훌쩍 넘었는데요. 1967년 첫 지점을 냈고 1990년대 전후로 국내 소매금융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최초 개인재무관리(PB)를 도입해 1대 1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보이고, 365일 자동화 코너와 직불카드도 도입하며 선진 금융의 진수를 보여줬죠.
2004년엔 씨티그룹이 최초 한미합작은행인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거듭났습니다. 오랫동안 한미 금융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도 상당히 큽니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사들의 국내 영향력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는데요. 씨티은행도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 영업에 적극적이진 않았고 한국 내 점포를 크게 줄이면서 2014년과 2017년 간헐적으로 철수설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2010년 한때 210개를 넘어섰던 점포 수는 지난해 3분기 현재 43개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아직 결정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씨티은행이 실제로 국내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명확해 보입니다. 들인 돈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씨티은행은 아태지역은 물론 본국에서도 경쟁사들과 비교해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와 맞물려 최근 CEO 교체도 결정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 내 영업에 집중하기 위해 기존 전략에 대한 제고에 나서면서 해외 소매은행들의 존폐 자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현재 씨티은행은 12개 아태 국가에 진출해 있는데요. 한국은 물론 여타 아태 국가들의 성과도 눈에 띄진 않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익은 2941억원에 불과했습니다. 2011년 4653억원을 기록한 후 연간 순익이 3000억원을 넘어선 해는 2018년(3078억원)이 유일합니다.
씨티은행도 코로나19로 소매금융 부문에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최근 언급됐고 며칠 전 인도에서 역시 이런 연유로 씨티은행 철수가 확정된 것처럼 보도됐습니다. 특히 인도에선 씨티은행이 자국 내 가장 규모가 큰 외국계 은행입니다.
한국만 놓고 보면 그간 수익성이 개선되지 못한 데다 이익공유제, 배당축소 등의 규제가 외국계 은행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매력이 줄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에 더해 또 하나 주목할 건 씨티은행이 최근 몇 년 간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디지털화에 나서면서 지점을 대폭 줄였는데 그에 따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매머드급인 국내 시중은행은 물론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잇단 출현으로 소매은행 부문에서 씨티은행이 설자리가 더욱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교롭게 씨티은행의 한국 철수설과 대조적으로 최근 홍콩에서는 씨티은행이 젊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자산관리 플랫폼을 론칭했는데요. 같은 아시아 시장인 싱가포르에 대한 애정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카카오뱅크 등 빅테크들이 강력한 플랫폼을 앞세워 기존 은행들을 위협하는 터라 외국계 은행이 한국의 젊은 금융 소비자층을 끌어오는 것이 쉽지 않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존 고객의 로열티만 내세우기엔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죠.
실제로 최근 국내 은행산업의 흐름을 살펴보면 혁신기술의 확산과 함께 핀테크와 빅테크의 큰 물결이 리테일뱅킹 쪽으로 집중되며 경쟁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해 국내 은행들도 디지털 전환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노리면서 외국계 은행 입장에선 향후 행보가 더욱 녹록지 않아진 상황입니다.
실제 프레이저 씨티은행 신임 CEO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 중인 디지털화를 언급하며 시장을 주도할 사업 부문에 대해 가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결국 씨티은행이 앞으로도 주도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놓고 주판알을 굴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는 2015년 중남미 지역을 총괄할 당시 이미 첫 해외조직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아르헨티나를 비롯,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부문을 매각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수익성에 따른 판단이라면 실리를 택할 가능성이 있겠죠. 실제 이런 부분들이 미국 씨티은행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국내에서는 씨티은행이 완전히 발을 빼기보다는 글로벌 IB(기업금융) 부문 등을 유지하되 소매은행 부문만 매각하는 방안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데요. 다만 이미 매각 흥행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는 데다 IB 부문의 미미한 성과를 감안할 때 소매은행 부문 매각에 성공하더라도 계속 한국 사업을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