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금융권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이종산업과 적극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러브콜을 많이 받은 기업은 다름 아닌 네이버다. 금융권 수장들이 나서 한때 빅테크의 금융권 진출을 염두해 왔다는 점을 살펴보면 적과의 동침이나 다름없다. 금융권이 네이버와 손을 잡는 이유, 그리고 다른 빅테크 기업인 카카오보다 네이버와 함께하려는 이유를 알아본다. [편집자]
보통 한 은행이 A업종의 B라는 기업과 손을 잡았다면 다른 은행은 같은 업종 내에선 C라는 기업과 손을 잡고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은행권과 편의점의 협력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신한은행은 GS리테일과 손을 잡고 다양한 방면에서 협력하기로 했는데, 이에 앞서 하나은행은 BGF리테일과 업무 협약을 맺은 바 있다.
반면 은행과 빅테크 기업 간 협업관계는 양상이 좀 다르다. 대부분 은행들이 오로지 네이버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네이버의 가장 큰 라이벌인 카카오와 은행의 협력 소식은 좀처럼 듣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 네이버가 카카오에 비해 더 뛰어난 경쟁력을 갖췄다기보다는 금융산업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네이버가 있으면 카카오도 있다
은행권이 네이버로부터 가장 많이 기대하는 영역은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기술, 네이버 플랫폼을 통해 보유한 빅데이터 등이 꼽힌다.
카카오가 비슷한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네이버의 AI 클로버가 있다면 카카오는 카카오미니가 있고, 네이버 클라우드가 있다면 카카오는 계열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통해 카카오 I 클라우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를 내세운다면 카카오 역시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가 있다.
당장 시장이 평가하는 두 기업의 가치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4일 기준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58조6420억원, 카카오는 55조383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카카오의 시가총액이 네이버를 3조원 차이로 쫓아온 게 불과 6개월도 안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카카오가 네이버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왜 카카오와는 함께하지 않을까
결국 네이버와 카카오 간 큰 격차가 없는데도 은행들이 네이버와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는 금융산업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최근 몇 년 사이 금융사업을 시작했지만 접근 방법은 180도 다르다.
카카오는 정공법을 택했다. 직접 은행(카카오뱅크)과 증권사(카카오페이증권), 간편결제(카카오페이) 계열사를 설립해 금융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중 손해보험사(카카오페이 손해보험)까지 출범할 예정이다. 웬만한 금융지주 못지않은 금융산업 포트폴리오다.
반면 네이버의 경우 우회로를 택했다. 직접 금융산업에 진출하기보다는 파트너를 통해 간접적으로 진출하는 방식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과 손잡고 대출상품과 CMA통장을 내놓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의 차이는 네이버라는 포털과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라는 각각의 플랫폼 경쟁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네이버는 포털 플랫폼인 만큼 초개인화된 금융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금융상품과 연결해주는 역할에 충실하는 전략을, 카카오는 개인형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특성을 살려 맞춤형 금융상품을 직접 설계해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네이버는 최대한 많은 금융회사와 손을 잡으려는 반면 카카오는 직접 거느리고 있는 금융 계열사와 공유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카카오뱅크의 경우 최근 신용평가 모델 고도화를 위해 카카오페이 등 카카오 계열사들과 협력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느냐"라며 "카카오는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디지털 경쟁력을 남과 나누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직접 키우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네이버와 카카오의 금융산업 접근법이 다른 만큼 라이선스를 직접 획득하지 않는 전략을 택한 네이버와의 금융협력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