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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감원 '소비자'시대 가고 '서비스'시대 오나

  • 2021.08.17(화) 06:30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 임원 일괄사표 요구
'윤석헌 지우기'로 소비자 보호 후퇴 우려

3개월여의 금융감독 수장 공석을 메운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직후 대대적인 임원 물갈이에 나섰다. 

금융당국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부원장 4명을 비롯한 부원장보 10명 임원 전원에게 일괄사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취임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신임 원장 취임 초기 임원에게 일괄사표를 요구하거나 스스로 사표를 낸 뒤 재신임을 받는 것은 통상적인 절차로 꼽힌다. 새 원장 취임 후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수장 교체로 달라진 새 감독 방향을 제시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실제 정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고 밝히며 윤석헌 전 원장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일 것임을 시사했다. 

소비자 보호와 금융서비스 지원 가운데 소비자 보호에 강한 방점을 찍었던 윤 전 원장은 즉시연금을 비롯해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 키코 문제 등과 관련해 소비자 피해보상을 강조해 금융사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종합검사를 부활시키며 금융기관 제재에 대한 잣대도 이전보다 엄하게 들이댔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 원장은 "금융시장과의 활발한 소통"과 "규제가 아닌 지원을 강조"하면서 윤 전 원장의 그림자 지우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 감독행정 기조에서 유턴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근거가 바로 임원 일괄사표 요구라는 것이다. 

물론 수장이 바뀐 만큼 새판을 짜고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견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정권말 임기가 채 9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통상적인 교체가 적절한가이다. 

정 신임 원장은 기재부, 금융위 등 경제부처 요직을 두루 거친 만큼 금융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거시에 대판 폭넓은 이해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외교부에 몸담았다.

코로나19 상황 이후 금융권은 매우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권이 지게 된 리스크도 이전과는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디지털전환 바람을 타고 새로이 금융권에 진입하는 핀테크, 빅테크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감독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이 모두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짧지만은 않아 보인다. 통상적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업무보고 기간을 최대한 줄인다고 해도 내달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국정감사도 앞두고 있다. 감독당국의 업무 연속성이 우려되는 이유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금융감독 방향의 선회가 시장에 어떤 혼란을 줄지에 대한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이번 일괄사표 제출 요구에 대해 금융감독과 소비자보호 후퇴를 우려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그동안 감독기구 자율성 확보를 위해 금융위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사모펀드 사태 처리 과정에서 금융기관에 엄정한 제재와 소비자피해 구제를 강조했던 이전 원장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이라며 "금융사고를 어물쩍 넘기고 피해 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했던 과거 관행으로 회귀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쌓아온 감독당국의 자율성 추구와 금융소비자 보호 노력이 흩어질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소비자 시대를 외치던 금융감독 당국이 수장 교체로 갑작스레 금융서비스 지원으로 키를 돌리자 한편에서는 우려가 다른 한편에서는 기대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이는 윤 전 원장이 소비자 보호에 크게 기울어진 추로 금감원을 이끌어 왔기 때문인데 금융사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산 동시에 금융정책을 펼치는 금융위와도 삐걱거렸다. 이번에는 반대로 금융지원 쪽으로 추를 완전히 기울일 경우 또다른 문제를 키울 수 있음을 불 보듯 뻔하다.  

금감원은 금융감독과 소비자 보호라는 서로 상반된 과제를 양손에 쥐고 외줄을 타야 한다. 당연히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예상되는 그림은 분명하다.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과제라면 한쪽에 힘을 과도하게 싣기보다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감독당국의 본연의 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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