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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푸라기]이름에 흔적만…미미해진 '화재보험' 존재감

  • 2023.03.11(토) 07:11

손보사 보험료 수입 비중 0.3%까지 쪼그라들어
'특수건물' 의무보험 외엔 관심 저조한 탓

/그래픽=비즈워치

국내 최대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의 보험료 수입 가운데 화재보험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작년 기준으로 고작 0.24% 입니다. 전체 상품 원수보험료(계약자에게 직접 받은 보험료)가 20조4466억원이었는데 화재보험은 491억원뿐이었죠. 

옛 동부화재는 기업집단 차원의 사명 변경(동부그룹→DB그룹)과 함께 2017년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꿨는데요. 'DB화재'가 아니라 DB손보로 개명했죠. 그 이유도 화재 비중이 무의미하다는 게 한몫 했습니다. 이 보험사 화재보험료 수입 비중도 작년 0.3%에 그칩니다.

메리츠화재는 전신이 1922년 국내에 처음 생긴 손보사 '조선화재해상보험'인데요. 이름에 화재를 유지한 건 이제 100년을 넘긴 역사성을 부각하는 면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 손보사도 영업에서의 화재보험 비중은 재작년 원수보험료 기준 0.7%에 불과합니다. 

손해보험업계 전체 원수보험료에서 화재보험이 차지하는 비율(손해보험협회 집계)은 2014년 0.44%에서 2018년 0.34%로 떨어졌고요. 전체 시장 규모도 코로나19 시기를 거친 최근엔 연 2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화재 사고 자체가 줄면서 시장이 쪼그라든 거죠. 화재예방 지식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제도가 갖춰진 덕도 있지만요.

화재보험 위험손해율 추이/자료=메리츠화재 화재보험협회 세미나 발표자료

이처럼 요새 보험업계에서 불은 별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엔 화재가 보험에서 가장 큰 상품 종목이었죠. 업력 긴 손보사 이름에 '화재'가 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화마로 인한 사고도 잦았고 피해도 격심했죠. '강 건너 불 구경', '호떡집 불난 듯' 같은 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죠. 

근대 화재보험의 탄생은 1666년 런던 대화재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그 해 여름 자정을 지난 한밤, 시내 골목길 빵집에서 시작된 불이 나흘 동안 런던 시내 주택의 80~90%를 태웠다죠. 세계 역사에서 손 꼽히는 최악의 불난리입니다. 이후 재건 과정에서 1680년 영국 최초의 화재보험회사(Fire Office)가 생긴 겁니다.

우리나라 화재보험 체계도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이듬해 서울시민회관 화재 등 대형 사고 뒤 자리잡았습니다. 국가 차원의 방재 공감대 속에 화재보험법 제정과 화재보험협회 설립이 이뤄졌죠. 

런던 대화재를 묘사한 그림/자료=런던소방청 홈페이지

현재 화재보험법(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 상에는 △16층 이상 아파트 △대단위 아파트 단지 △일정 규모 이상 학교·공장·숙박업소·공연장·대규모점포 등 다중이용시설이 '특수건물'로 분류됩니다. 이런 특수건물 소유자는 화재 시 해당 건물의 손해를 보상받고, 또 관련 법상 손해배상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특약부화재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하죠.

하지만 이렇게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관심이 적은 게 현실입니다. 손보사들도 손해율은 낮지만 사업비가 많이 드는 화재보험에 적극적이지 않죠. 올해 창립 50년을 맞는 화재보험협회의 위상이나 역할이 예전만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섭니다. 방재업무는 소방청, 보험업무는 개별 손보사나 손보협회와 겹친다며 때마다 업무나 회비 중복 논란이 일기도 하죠.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화재보험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지난 4일 밤 인천 동구 현대시장에 큰 불이 났는데요. 취객의 방화 탓에 모두 205개의 점포 중 47개가 타버렸답니다(인천시 집계). 피해 점포 중 7곳은 화재보험도 가입하지 않아 보험금에 기댈 수도 없다고 하네요. 화재 보험 무관심이 제도나 시장에 '빈틈'을 방치하고 있진 않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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