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사무기기 그룹 신도리코(Sindoh)가 오너사(社)의 수장에 역시나 ‘가신(家臣)’을 앉혔다. 성장 정체에 빠져 있는 주력사에는 잇따라 외부인사를 수혈하고 있는 경영 기조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3세 우승협 승계 핵심 양대 축에 ‘가신’
29일 업계에 따르면 신도리코그룹 계열사 신도시스템과 신도에스디알(SDR)은 올해 1월 대표이사를 박동안 전 ㈜신도리코 대표(부사장)에서 한학흥씨로 동시에 교체했다. 한 신임 대표는 커리어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지만 모태 주력사인 사무기기 업체 ㈜신도리코에서 근무했던 내부 출신이다.
하나는 자체 사업이 없는 페이퍼컴퍼니, 다른 한 곳은 빌딩임대 및 통신기기판매 업체로, 사업적으로는 중추사 ㈜신도리코에 비해 이렇다 할 게 없는 계열사들이다. 반면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확인 가능한 범위로도, 2000년대부터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지탱해왔던 ‘옥상옥’ 회사들이다.
특히 2대 오너 우석형(70) 회장이 2010년 신도시스템 지분 증여를 통해 1남2녀 중 장남 우승협(31) ㈜신도리코 전무(미래사업본부장)를 1대주주로 올려놓은 뒤로는 3대 우회 경영권 승계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우 전무(50%)→신도시스템(29.17%)→신도SDR(22.63%)→㈜신도리코 ▲우 전무(50%)→신도시스템(6.05%)→㈜신도리코 ▲우 전무(60%)→비즈디움(6.76%)→신도SDR(22.63%)→㈜신도리코 3개 출자고리를 통해 지분 승계를 사실상 매듭지은 상태다.
우 회장은 이처럼 오너십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두 계열사들의 경영을 오랫동안 정통 ‘신도맨’들에게 맡겨왔다. 각각 2007년 1월, 2008년 1월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부터다. 황주연, 박용익, 박동진 전 대표 등이 면면이다.
한 대표의 전임 박 전 부사장 역시 신도리코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80년대 말 ㈜신도리코에 입사해 해외사업부장, 기획실장을 거쳐 2022년 1월 단독대표에 올랐다. 이어 작년 1월부터 신도시스템과 신도SDR의 대표를 겸임해왔다.

성장 정체 빠진 주력사엔 ‘IB맨’
우 회장이 2019년 말 본격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한 이후 사업 주력사 ㈜신도리코-외부 인사, 비주력 오너사-내부 출신으로 운영하는 이원(二元) 경영구도가 줄곧 이어지는 양상이다.
우 회장은 ㈜신도리코의 경우 2019년 12월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이사회의장으로 주요 현안만 챙겨왔다. 올해 3월에는 이사회에서도 손을 뗐다. 지금은 그룹 14개(국내 9개·해외 5개) 계열사 중 신도SDR 사내이사직만 가지고 있다.
㈜신도리코 대표에서 물러날 무렵 삼천리 사장 출신의 황성식 전 부회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바 있다. 2020년 3월~2022년 1월 활동했다. 이어 박동안 전 부사장을 거쳐 작년 3월 삼일회계법인 및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지낸 서동규 현 사장을 발탁했다. 올해 1월 ‘공동’ 꼬리표를 떼고 단독대표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잇단 외부인사 영입은 사무기기 ‘한 우물’만 파왔던 ㈜신도리코가 성장 정체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신도리코는 2010~2012년 7000억원을 웃돌던 매출이 뒷걸음질 치며 작년에는 3410억원에 머물렀다. 2010년 827억원을 찍었던 영업이익은 최근 5년간 많아야 301억원 수준이다. 2020년과 2022년에는 각각 146억원, 22억원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너 3세 우 전무의 경영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재무학 석사 출신으로 2022년 11월 미래사업실장으로 입사한 뒤 작년부터 미래사업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에서 한 발 비켜난 우 회장이 후계자에게 신도리코의 체질 개선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의 중책을 맡겼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