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부터 중견제약사 경동제약 주식을 야금야금 사모으고 있는 친족사가 하나 있다. 알피에이치(RPH)코리아(이하 ‘알피에이치’)다. 한데, 이곳이 경동제약 경영에는 일찍부터 담을 쌓고 지낸 류덕희(87) 창업주 세 딸들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비록 류 명예회장의 1남3녀 중 늦둥이 아들 류기성(43) 부회장이 ‘광속 승계’ 통해 경영권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세 누이는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는 존재다. 경동제약 오너 지배구조를 얘기하면서 ‘우먼파워’를 빼놓고 갈 수 없다.

2대주주 송촌재단 이사장직 맏딸이 승계
경동제약은 류(柳)씨 오너 일가의 주식 분산·소유를 특징으로 한다. 최대주주인 류 부회장 17.51% 외에도 류 창업주(1.24%)를 비롯해 일가 42명이 18.05%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장학재단 송촌재단 등 관계사 5곳 9.54%를 합해 45.10%로 대주주를 구성하고 있다.
일가 중 이 명예회장의 세 딸 몫 역시 유달리 적잖다. 2019년 9월 류 창업주가 당시 지분 10.1% 중 3분의 2가 넘는 7.16%를 류 부회장에게 증여해 지분 승계를 사실상 매듭지었지만 그간 틈틈이 딸과 사위, 외손주들에게 개인 주식을 물려준 게 주된 이유다.
맏딸 류기연(55)씨가 2.22%를 소유 중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현 경동제약 2대주주 송촌재단 소유의 4.96% 또한 류기연씨 지배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버넌스워치] 경동제약 ②편’에서 언급했지만, 2021년 6월 류 창업주가 경영 2선으로 퇴진하고 류기성 체제로 전환할 무렵인 그 해 11월 송천재단 이사장직은 장녀에게 넘겨줘서다.
차녀 류연경(53)씨는 1.79%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자녀 심예진(23) 0.64%, 심혜린(18) 0.68%를 합하면 3.11%다. 막내딸 류효남(52)씨는 개인 1.25%와 남편 신승훈(56)씨 0.63%, 쌍둥이 자녀 신혜진(25)·신재희(25) 각 0.58%를 포함해 3.04%를 보유 중이다.
뿐만 아니다. 알피에이치까지 합하면 류 창업주 세 딸들의 영향권에 있는 경동제약 지분이 14.01%나 된다. 알피에이치가 2010년 4월 주주로 등장한 이래 작년 말부터 올 4월초까지 장내에서 5억원가량에 0.29%를 매입해 현재 0.69%를 보유 중으로, 창업주가 사실상 딸들 몫으로 떼준 회사여서다.

세자매, 대표·이사·감사로 저마다 한 자리
알피에이치는 1996년 6월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건강식품 판매업체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류 명예회장이 대표를 맡아 직접 경영을 챙겼고, 경동제약이 출자해 지분 9%를 보유했다.
1999년 6월 대표가 바뀌었다. 후임이 이화여대 특수교육학 석사 출신의 장녀 류기연씨다. 29살 때다. 류 부회장의 경동제약 입사 시기가 2006년 11월인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한참 앞서 류 창업주가 맏딸에게 알피에이치를 맡겼다고 할 수 있다. 이어 2014년 3월에는 류연경씨가 이사회에 진입했고, 2020년 3월에는 류효남씨가 감사로 합류했다.
(참고로 알피에이치 현 이사진은 3명으로, 나머지 한 명은 2017년 3월 선임된 의약품 도매업체 제이씨헬스케어의 정원희(43) 부회장이다. 류 창업주의 매제 정상욱(76) JC헬스케어 회장의 아들이다.)
분명 이례적인 모습이다. 모태사인 경동제약에는 등기임원으로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린 적 없는 세자매가 알피에이치에서 만큼은 대표, 사내이사, 감사로서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서다.
최대주주 또한 류기연 대표다. 확인 가능한 범위로, 2010년 4월부터 줄곧 이랬다. 지분도 현 자본금 13억원의 42.08%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외 주주들은 확인되지 않지만 현 경영구도상 류연경씨, 류효남씨 역시 대주주일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결국 알피에이치가 세자매의 개인회사라는 의미다.
게다가 알피에이치는 점점 기업 볼륨이 커지고 있다. 최근 경동제약 주식 매입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총자산(2024년 말) 151억원에 자기자본이 125억원에 이른다. 2018년 말 38억원에서 4배 불어난 수치다. 재무실적은 파악되지 않지만, 벌이가 좋다는 방증이다.
경동제약과의 내부거래가 한 몫 하는 것일 수 있다. 경동제약은 2019년부터 알피에이치로부터 매출이 일어나고 있다. 알피에이치가 2019년 1월 기존 ‘케이디코머스’에서 현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 단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41억원을 시작으로 최근 3년간은 70억원대다. 바꿔 말하면 알피에이치가 이제는 경동제약과 밀착해 의약품 도매영업을 한다는 얘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