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업계에 '오너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주요 제약사들이 잇따라 인사를 통해 오너 3세를 핵심 보직에 전진 배치하거나 승진시킴으로써 경영 입지와 책임을 한층 강화하면서다. 제약사 오너 3세들의 공통분모를 통해 제약기업들이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어떤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약 업계가 '오너 3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영 구조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오너 2세까지는 오너 경영인이 단독으로 대표이사를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3세부터 전문경영인과 역할을 분담하는 경영 체제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일동제약을 비롯해 JW홀딩스와 유유제약, 제일약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기업은 오너 3세 경영인이 그룹 경영과 전략을 총괄하고, 제약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연구개발(R&D), 글로벌 사업, 의약품 운영 전반을 맡는 구조를 통해 경영 안정성과 사업 효율화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전문경영인과 공동 대표 체제 확산
일동제약은 지난 5일자로 이재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하면서 오너 3세이자 기존 대표이사인 윤웅섭 회장과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작년말 인사를 통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윤 회장의 단독 대표 체제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과의 투톱 체제로 정비한 것이다.
신임 이 대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와 동아에스티를 거쳐 영진약품 대표이사를 역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윤 회장이 경영의 방향성과 자원 배분을 맡고, 제약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이 대표가 핵심 사업을 주도하는 그림이다.
JW그룹은 공동 대표 체제를 가장 이른 시기부터 안착시킨 사례로 꼽힌다. 오너 3세인 이경하 회장은 2008년 주력 계열사인 JW중외제약을 시작으로, 2011년 지주사인 JW홀딩스까지 전문경영인과의 공동 대표 체제를 구축해왔다. 이 회장은 그룹 전반의 경영 전략과 신약 개발, 사업 다각화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실질적인 사업 운영은 내부에서 성장한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현재 JW홀딩스를 함께 이끌고 있는 차성남 대표 역시 JW중외제약에서 생산과 경영기획을 거쳐 JW생명과학 대표이사로 9년간 재직한 내부 인사다. 장기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JW그룹식 '내부 육성형 전문경영인 모델'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유유제약도 창업주 고(故) 유특환 회장 손자인 유원상 사장이 2019년부터 단독 대표 체제를 이어오다 2023년 회사에서 재경부장 등 10년 이상 근무한 박노용 대표이사와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오너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도 재무와 관리 영역에서는 내부 출신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강화해 경영 안정성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제일약품은 오너 3세인 한상철 사장이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오르기 전까지 전문경영인 성석제 사장이 단독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를 이끌다 공동 대표 체제로 전환해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성 대표는 한국화이자제약에서 한국인 최초로 부사장에 오른 인물로, 2005년부터 제일약품 대표이사를 맡아온 국내 제약업계 최장수 전문경영인이다.
단독 전문경영인 체제서 오너 경영 전환 가능성도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 아래에서 실무 책임자를 맡아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오너 3세들도 있다.
종근당에서는 오너 3세인 이주원 상무가 신약사업기획을 맡아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이 상무는 작년에 이어 올해 연이어 승진하며 그룹 내 역할과 책임 범위를 점차 넓히는 모습이다. 현재 종근당은 한국노바티스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사에서 마케팅 경험을 쌓은 전문경영인 김영주 사장이 2015년부터 단독 대표이사로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동국제약 권기범 회장의 장남이자 창업주 3세인 권병훈 재무기획실 실장은 경영 관리 부문에서 실무를 맡고 있다. 권 실장은 2024년 4월 경영관리본부에 입사한 데 이어, 최근 인수한 리봄화장품의 상무로도 합류하며 계열사 전반에 대한 업무 경험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현재 송준호 대표가 2022년부터 단독 대표 체제로 이끌며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SK그룹 오너 3세인 최윤정 부사장은 동아에스티 부사장과 SK바이오 투자센터장을 지낸 이동훈 대표이사 밑에서 SK바이오팜의 전략 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 부사장은 2017년 회사에 합류한 이후 올해 전략본부장으로 선임돼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업 방향 설정을 담당하고 있다.
경영과 사업 역할 분담…오너3세식 분업 경영
제약 업계에서는 오너 3세 다수가 경영·재무·컨설팅 등 비(非)제약 전공 배경을 갖고 있는 만큼, 연구개발과 의약 사업 운영에서는 산업 경험과 현장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분리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공동 대표 및 분업형 체제를 단순한 과도기가 아닌, 오너 3세 시대의 새로운 경영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오너가 중장기 전략과 자본 배분, 신사업 방향 설정을 맡고, 전문경영인이 R&D·글로벌 사업·의약품 운영을 책임지는 구조가 점차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오너가 대표직을 맡아 경영과 사업 운영을 모두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오너 3세들은 경영 전반의 의사결정과 방향 설정에 집중하고 사업 운영은 전문경영인의 경험과 역량에 맡기는 분위기"라며 "경영 안정성과 사업 실행력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자, 중장기적인 기업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판단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