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업계에 '오너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주요 제약사들이 잇따라 인사를 통해 오너 3세들을 핵심 보직에 전진 배치하거나 승진시킴으로써 경영 입지와 책임을 한층 강화하면서다. 주요 제약사 오너 3세들의 공통분모를 통해 제약기업들이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어떤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내수 시장 포화와 약가 인하 압박, 제네릭 중심 성장의 한계가 맞물리며 국내 전통 제약사들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신약 개발 비용과 리스크는 커지고 글로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면서, 기존 사업 방식만으로는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이러한 변화는 오너 3세들에게 단순한 경영 승계를 넘어 기업의 성장 전략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약업계에서는 오너 3세를 중심으로 신약 개발 자회사 설립·인수, 전략적 지분 투자, 미래 사업 전담 조직 신설 등 연구개발(R&D)을 축으로 사업 구조 재편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자회사로 신약 개발 분리…R&D 집중·리스크 분산
그룹 내에서 주요 보직과 실무 경험을 거치며 오랜 기간 경영 전면에 서 있던 오너 3세들은 신약 연구개발(R&D) 사업부문을 자회사 및 관계사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R&D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개발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일동제약, 제일약품이 대표적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강정석 회장은 201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20년 이상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강 회장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신약 개발을 단일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기보다 자회사와 관계사를 활용한 다층 구조로 R&D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주력 사업 회사인 동아에스티 자회사 미국 메타비아(옛 뉴로보 파마슈티컬스)를 통해 MASH(대사기능장애 관련 지방간염) 및 비만 치료제 신약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개발사 앱티스를 인수해 차세대 항암 플랫폼을 확보했다. 신약 개발 전문회사에 지분 투자를 통해 외부 기술과의 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일동제약 윤웅섭 회장 역시 2014년부터 대표이사직을 맡아 장기간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며 R&D 구조 개편을 주도한 오너 3세로 꼽힌다. 윤 회장은 지주사 체제 하에서 신약 개발 기능을 세분화했다.
일동홀딩스 자회사 아이디언스를 통해 항암 신약 개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일동제약에서는 R&D 부문을 물적분할한 유노비아를 통해 연구 조직을 분리했다. 초기 연구 단계에 특화된 아이리드비엠에스(iLeadBMS)도 운영하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까지 각 단계의 역할을 나눠 그룹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구조다.
제일약품의 한상철 사장 역시 그룹 관리와 신약 R&D를 병행해왔다. 한 사장은 2017년부터 제일파마홀딩스 대표를 맡아 그룹 전반을 관리해왔다. 지난해부터 제일약품 신임 대표로 선임되어 기존 성석제 대표와 함께 공동 대표로서 핵심 의약품 사업과 신약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신약 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를 설립한 후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정'을 국산 신약 37호로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같은 해 말 코스닥 상장까지 성사시키며 신약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조달 구조도 마련했다.
현재 차세대 항암제를 자체 개발하는 동시에 셀트리온과 공동 연구개발도 진행하는 등 제네릭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안과질환 집중·차세대 성장 동력 모색
중견 제약사 가운데서는 안과질환이라는 명확한 강점 분야에 집중해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하는 동시에 R&D 기반의 성장성을 키우려는 오너 3세가 눈에 띈다.
국제약품 남태훈 회장은 2015년 1월 공동대표이사에 오른 뒤, 지난해 10월 부친인 남영우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남태훈 대표가 단독 체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남 대표는 국제약품이 축적해온 안과용 의약품 영업·처방 네트워크를 핵심 자산으로 삼아 안과용 점안제 생산라인 증설에 나섰고, 올해는 글로벌 안과 사업 확대를 전담하는 사업개발본부를 신설하며 해외 시장을 겨냥한 중장기 성장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일제약 허승범 회장 역시 안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허 회장은 창업주 손자이자 오너 3세로, 2013년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안과 분야 경쟁력 강화를 축으로 베트남 생산기지 확장과 북미 시장 진출을 병행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 위에 글로벌 확장을 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오너 2세이지만 올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한림제약 김정진 회장도 안과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며 기존 안질환 의약품 영업을 넘어 예방·관리·치료를 아우르는 '눈 건강 전 주기 관리'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밖에 신약 R&D와 전략 조직을 중심으로 차세대 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오너 3세들의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종근당 오너 3세 이주원 상무는 2018년 종근당그룹 계열사 종근당산업 사내이사로 그룹에 합류한 뒤, 2020년부터 종근당 개발기획팀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신약사업기획을 담당하며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모달리티를 중심으로 신약 R&D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SK그룹 재계 오너 3세인 SK바이오팜 최윤정 전략본부장은 2017년 SK바이오팜에 입사해 전략팀에서 경영전략 업무를 맡았다. 이후 사업개발 조직을 거치며 글로벌 사업 경험을 쌓았다. 2023년 말 임원으로 승진해 사업개발본부장을 이끈 데 이어, 올해 전략본부장으로 이동해 전사 중장기 전략과 신성장 사업 발굴을 총괄하고 있다.
최 전략본부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현장에 직접 방문해 글로벌 기업 및 투자 기관들과 실무 미팅을 가지면서 한층 커진 존재감을 보였다.
오너3세 경영 성패 따라 기업 미래 좌우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제네릭 기반의 안정적 수익 모델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합성의약품 중심의 산업 구조가 바이오의약품으로 재편되고, 신약 개발의 무게중심 역시 항체약물접합체(ADC), 표적단백질분해제(TPD), 리보핵산(RNA),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모달리티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로서는 기존 사업 방식만으로는 성장 한계를 넘기 어려운 환경이 된 셈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신약 R&D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신약 개발은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 높은 실패 가능성을 동반하는 만큼, 오너 3세들은 단일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기보다는 자회사·관계사 활용, 공동 개발, 전략적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담을 분산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결국 오너 3세 경영의 성패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부합하는 R&D 투자 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구축했는지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의약품 영업력과 생산력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R&D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내재화했는지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면서 "오너 3세들이 기업 체질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수년 뒤 기업 가치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