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약품 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주주 전체의 이익'과 기업의 장기 성장 전략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한미약품 기타비상무이사인 신동국 회장의 저가 원료 조달을 통한 비용 절감 전략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쟁점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신 회장이 내세운 비용 절감이 회사의 단기 실적 개선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자칫 의약품 품질 경쟁력 저하와 연구개발(R&D) 투자 여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와 전체 주주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용 절감, 주주 전체 이익 부합 여부 '쟁점'
6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내부에서는 신 회장의 경영 간섭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 회장이 영업이익 확대와 비용 절감을 강조하며 저가 원료 입찰 기조 강화를 요구하는 배경에 배당 확대 등 단기 재무지표 개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앞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신 회장이 고지혈증 복합제 '로수젯'의 원료를 값싼 중국산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는 등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원가율을 낮춰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은 단기 실적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영업이익과 현금흐름이 개선될 경우 배당 여력 역시 함께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된다. 신 회장은 한미약품 기타비상무이사이자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로, 현재 개인 지분 16.43%와 본인이 100% 지분을 보유한 한양정밀을 통해 지분 6.95%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이달 말 임종윤 대표 등 5인으로부터 6.45%를 추가로 취득하면, 총 보유 지분은 약 29.83% 수준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이번 저가 원료 조달 등 비용 절감 전략이 단기 실적과 배당 확대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전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판단인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논란은 최근 개정된 상법과도 맞물린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경영 판단이 특정 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안이 신 회장의 현금 수익 증대를 우선한 결정으로 비춰질 경우, 특정 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겠다는 상법 개정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실적 개선, 품질 경쟁력 저하 우려
수익성 제고에 무게가 실릴 경우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면서 중장기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원료의약품(API)은 의약품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그러나 저가 원료 중심의 비용 절감 기조는 자칫 품질 경쟁력과 혁신 R&D 전략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다.
한미약품은 고(故) 임성기 회장 시절부터 매출 대비 두 자릿수 연구개발비를 유지하며 개량신약과 혁신신약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를 만들어온 'R&D 중심 제약사'다. 이러한 기업 정체성을 고려하면 비용 절감 중심의 경영 기조가 장기 성장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해외 저가 원료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나 글로벌 물류 차질이 발생했을 때 국내 생산과 공급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 역시 위험 요인으로 거론된다. 정부가 인도·중국산 대비 가격이 높은 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원료 국산화'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 역시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공급 안정성과 자립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축 '전문경영인 독립성'
신 회장의 경영 개입 의혹으로 떠오른 2차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는 박재현 대표가 있다. 신 회장이 수익성 개선을 위한 저가 원료 사용을 제안하고 있는 반면, 박 대표는 품질 경쟁력과 연구개발 투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십수 년간 한미에서 몸담아 온 이른바 '한미맨'으로, 내부 임직원들 사이에서 비교적 두터운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해 온 인물이다. 팔탄 공장장을 역임한 경력을 바탕으로 의약품 품질 관리와 생산 공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원료 품질과 연구개발(R&D) 중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단기 수익성 개선보다 글로벌 기술 경쟁력과 파이프라인 가치 제고가 기업 가치의 본질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갈등 국면에서 한미약품 그룹 회장인 송영숙 회장은 전문경영인의 독립 경영에 대한 원칙을 강조하며 신 회장의 경영 개입 논란에 각을 세우고 있다. 송 회장은 앞서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해야 하며, 전문경영인은 권한과 책임 아래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배구조"라고 밝혔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독립성과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를 재확인한 셈이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지분율 다툼을 넘어, 한미약품의 지배구조 원칙과 경영 철학을 둘러싼 문제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최대주주의 영향력 범위와 전문경영인의 독립성, 그리고 '회사 및 주주 전체의 이익'이라는 개정 상법의 기준이 맞물리면서 경영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