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은 신약 개발의 전쟁터입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차별화된 기술을 무기로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요. 우리 바이오 기업들의 핵심 기술과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 현황을 일반인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조명해봅니다. [편집자 주]
10년 넘는 개발 기간, 두 차례의 임상시험 '실패'. 시장에서는 '물약', '안 되는 약'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일, 이 약이 최대 1조 원 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오스코텍과 제노스코가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세비도플레닙(Cevidoplenib)'의 이야기입니다.
이 약은 자가면역질환을 다룹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외부 침입자를 막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이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결과로 생기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입니다. 관절이 붓고 굳는 류마티스관절염, 피부 곳곳에 멍이 들고 출혈이 멈추지 않는 면역혈소판감소증이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세비도플레닙의 핵심 타깃인 면역혈소판감소증(ITP)은 희귀질환입니다. 혈액 속 혈소판은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질환에서는 면역계가 혈소판을 적으로 오인해 스스로 파괴합니다. 그 결과 혈소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작은 충격에도 출혈이 생기거나 멍이 쉽게 드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 오작동의 핵심에 'SYK(비장 타이로신 카이네이즈)'라는 단백질 스위치가 있습니다. ITP에서는 잘못 만들어진 항체가 혈소판 표면에 달라붙으면, 면역 청소부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가 이를 발견합니다. 이때 대식세포 내부에서 SYK가 켜지면서 '파괴하라'는 신호를 전달하고, 결국 혈소판이 파괴됩니다.
세비도플레닙은 바로 이 SYK 스위치를 차단해 혈소판 파괴의 연쇄 반응을 초기에 끊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런 기전을 토대로 오스코텍과 제노스코는 2014년 세비도플레닙 공동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의 임상 실패, 무슨 일?
세비도플레닙이 지나온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두 가지 자가면역질환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 2020년에 결과가 나온 류마티스관절염 환자 대상 2상이었고, 두 번째는 2023년초에 결과가 나온 면역혈소판감소증(ITP)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2상입니다. 두 임상 모두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시장은 임상 실패로 받아들였고 세비도플레닙에는 '안 되는 약'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실패'라고 불렸지만…윤태영 대표 회고
하지만 연구자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이번 기술이전 계약 체결 이후 윤태영 오스코텍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개발 과정을 회고했는데요. 당시 '실패'로 불린 두 임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연구자인 그가 보기에 단순히 '실패'라고 보기 어려운 유의미한 데이터들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류마티스관절염 임상에 대해 윤 대표는 "SYK가 류마티스관절염 전체 환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항체 기반 면역의 비중이 높은 초기 환자 그룹(전체의 약 3분의 1)만 별도로 분석하니 유의미한 효능 신호가 확인됐습니다. 그는 "전체 환자가 아닌, SYK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환자군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습니다.
ITP 임상에 대해서도 아쉬움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윤 대표는 "주요 목표치는 충족하지 못했지만, 용량이 높아질수록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명확하게 확인됐고, 허가 심사와 연관성이 높은 2차 목표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쟁력 면에서 "타발리스는 물론, 사노피가 개발 중인 또 다른 계열의 경쟁 약물 릴자브루티닙의 임상 데이터와 비교해도 효능에서 뒤지지 않으면서, 구토·설사 등 환자가 약을 견뎌내는 측면에서는 월등히 우수한 결과였다"고 밝혔습니다.
10년 지나 다시 주목받은 '세비도플레닙'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의 임상 실패와 오랜 파트너 탐색 끝에, 오스코텍은 이달 1일 미국 희귀질환 전문 바이오 제약사 아지오스와 세비도플레닙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지오스는 희귀 혈액질환 분야에서 자체 개발한 신약으로 유전성 빈혈 치료제를 미국·유럽에서 허가받고 상업화한 이력을 가진 회사입니다.
오스코텍은 이번 계약으로 계약 즉시 받는 선급금 2500만 달러(약 375억 원)에 개발·허가·판매 단계마다 추가로 받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더해 총 최대 6억 6500만 달러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세비도플레닙이 시장에 출시된 뒤에는 상업화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합산해 수령하는 구조이며, 아지오스는 2028년 상반기 임상 3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극적인 반전의 배경에는 SYK 기전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진 흐름이 있습니다. 지난해 6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SYK를 겨냥한 신약 후보물질 '구사시티닙'을 미국 바이오텍 포메이션바이오로부터 최대 6억 2800만 달러에 사들이면서, 그동안 외면받던 SYK 기전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글로벌 면역질환 분야에서 임상 2상까지 마친 SYK 표적 신약은 오스코텍의 세비도플레닙이 유일했습니다. 구사시티닙은 이미 사노피가 확보했고, 중국 제약사 허치메드가 개발 중인 유사 계열 물질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 막혀 있었습니다. SYK 신약을 원하는 기업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세비도플레닙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도였습니다.
오스코텍은 이번 기술이전으로 세비도플레닙의 개발 부담을 아지오스에 넘기는 대신, 내성이 생긴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내성 항암제'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0여 년의 개발 여정과 두 차례 '실패'의 낙인을 딛고 글로벌 파트너를 만난 세비도플레닙. 이제 아지오스의 손에서 새 챕터를 써 내려갈 이 약이 글로벌 희귀질환 시장에서 어떤 존재감을 발휘할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