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치료제가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경쟁의 기준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위고비에서 마운자로로 이어진 시장 재편에 이어, 업계는 더 높은 효능과 낮은 부작용을 목표로 한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마운자로의 성공 요인과 다중기전 기반의 차세대 개발 경쟁, 그리고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이전·공동개발 전략을 통해 비만약 패권전쟁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비만약 치료제 개발은 기존에는 자체 개발 중심의 전략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유망 후보물질과 차별화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확대되는 추세다.
기술수출(License-out), 기술도입(License-in), 공동 연구개발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통해 신속하게 파이프라인을 확충하는 동시에 개발 리스크는 줄이고 개발 속도는 높일 수 있어서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 활발
국내 기업 중에서는 디앤디파마텍이 대표적인 기술수출 사례로 꼽힌다. 디앤디파마텍은 2023년 미국 바이오기업 멧세라(Metsera)에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DD02S, DD03, MET06 등을 기술수출했다. 이후 GLP-1/GIP 이중작용제 DD14, 아밀린 작용제 DD07, 삼중작용제 DD15 등이 추가되면서 계약 규모는 약 8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번 계약은 단일 후보물질이 아닌 경구화 플랫폼 '오랄링크(ORALINK)'를 기반으로 여러 비만치료제 후보물질을 한꺼번에 글로벌 제약사에 이전했다는 점에서 차세대 비만약 개발 플랫폼의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 기술수출은 글로벌 임상 개발과 상업화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계약금·마일스톤·로열티 등 개발 단계에 따른 수익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미약품도 2020년 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HM12525A)를 MSD에 기술수출했다. 계약 규모는 총 8억7000만달러다. 당초 대사이상 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주목받았지만, MSD는 이후 비만치료제로 개발 방향을 확대했다. 현재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GLP-1 계열 대표 비만치료제인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비교하는 임상 2상이 완료된 상태다.
올릭스는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와 리보핵산 간섭(RNAi) 기반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OLX702A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총 6억3000만달러로, 기존 GLP-1 치료제와 병용해 체중 감소 효과를 높이는 차세대 전략으로 주목받았다.
기술도입 통한 파이프라인 확보 경쟁
기술도입을 통한 파이프라인 확보 경쟁도 이어지고 있다. HK이노엔은 2024년 중국 바이오기업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Sciwind Biosciences)로부터 GLP-1 유사체 계열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에크노글루타이드(XW003)'의 국내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도입했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주 1회 투여 방식의 GLP-1 계열 치료제로, 중국에서 당뇨·비만 임상 3상 단계에 진입한 물질이다. HK이노엔은 국내 독점 개발·사업권을 확보하고 국내 임상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JW중외제약도 지난 4월 중국 간앤리 파마슈티컬스(Gan & Lee Pharmaceuticals)와 GLP-1 계열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보팡글루타이드(GZR18)'의 국내 독점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보팡글루타이드는 기존 주 1회 투여제보다 투약 편의성을 높인 2주 1회 투여 방식으로 개발 중인 후보물질로, 중국 임상 2b상에서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으며 중국에서 임상 3상,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기술도입은 이미 검증된 후보물질이나 기술을 들여와 개발 리스크를 낮추고, 초기 연구 단계를 건너뛰어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자체 발굴 대비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확충할 수 있어, 단기간 내 경쟁력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공동 연구개발로 성공 가능성 'UP'
서로 다른 기술과 역량을 결합하는 공동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벤티지랩은 유한양행과 장기지속형 세마글루타이드 제형 공동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고, 프로젠은 미국 라니 테라퓨틱스(Rani Therapeutics)와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또 대웅제약은 지난달 월 1회 투여 가능한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 개발을 위해 티온랩테라퓨틱스와 손을 잡았고, HK이노엔도 지난 4월 AI 기반 신약 설계 플랫폼 기업 아토매트릭스와 새로운 기전의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발굴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었다.
공동개발은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을 서로 보완해 리스크와 비용을 분담하면서도, 후보물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각 기업이 보유한 플랫폼 기술, 임상 경험, 상업화 네트워크가 결합되면서 개발 속도를 높이고 파이프라인의 성공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차별화 기술과 개발 속도 '시장 주도권 좌우'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은 이제 단순히 어떤 후보물질을 확보했는지를 넘어, 변화하는 시장 요구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고 개발에 적용하느냐의 싸움으로 이동하고 있다.
위고비가 주 1회 투여 시대를 열고, 마운자로가 GLP-1·GIP 이중기전으로 비만치료제의 기준을 바꾼 것처럼 시장의 경쟁 축은 계속 이동하고 있다. 체중 감소 효과를 넘어 투약 편의성, 안전성, 장기 복용 가능성을 높이는 기술력 확보가 후발주자들이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경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개발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후보물질과 플랫폼 기술, 임상 개발 역량을 가진 기업 간 협력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시장 진입 시점을 앞당기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만치료제 시장은 새로운 기술과 더 우수한 효능을 앞세운 후발주자들이 등장하면서 경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외부 기술 도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진입하느냐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