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치료제가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경쟁의 기준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위고비에서 마운자로로 이어진 시장 재편에 이어, 업계는 더 높은 효능과 낮은 부작용을 목표로 한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마운자로의 성공 요인과 다중기전 기반의 차세대 개발 경쟁, 그리고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이전·공동개발 전략을 통해 비만약 패권전쟁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위고비가 주사형 비만치료제 시장을 열며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면, 후발주자인 마운자로는 시장의 기준 자체를 바꿔놓았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단일 기전으로 비만약 시대를 연 위고비에 이어 마운자로가 GLP-1·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펩타이드) 이중기전을 앞세워 더 높은 체중 감량 효과와 대사 개선 효과를 입증하면서 비만약 경쟁의 중심축을 옮겼다.
마운자로의 성공은 새로운 경쟁의 출발점이 됐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더 높은 효능과 차별화된 기전을 앞세운 '포스트 마운자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릴리·노보·리제네론, 차세대 비만약 선점 경쟁
마운자로 개발사인 일라이 릴리는 GLP-1·GIP·글루카곤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삼중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를 개발 중이다. 마운자로가 식욕 억제와 혈당 조절에 초점을 맞췄다면 레타트루타이드는 여기에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는 글루카곤 기전을 추가했다.
최근 공개된 임상 3상(TRIUMPH-1) 결과에서 레타트루타이드는 최대 28.3%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이며 마운자로(72주 시점 평균 22.5% 체중 감소)가 세운 체중 감량 기록을 넘어섰다. 일부 환자군에서는 30% 이상의 체중 감소 효과도 확인됐다. 현재 회사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글로벌 3상 연구들도 병행하며 허가를 준비하고 있다.
위고비 개발사 노보 노디스크도 차세대 비만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GLP-1)에 아밀린 유사체인 카그릴린타이드를 결합한 복합제 ‘카그리세마(CagriSema)’를 개발 중이다.
카그리세마는 임상시험에서 위고비 대비 우수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이며 차세대 비만치료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신청을 완료했으며, 올해 하반기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노보는 GLP-1과 아밀린을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작용제 제나감타이드(구명칭 아미크레틴)도 개발 중이다. 아밀린은 포만감을 높이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추는 호르몬으로, GLP-1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다.
노보 노디스크는 아미크레틴을 통해 위고비를 뛰어넘는 체중 감량 효과를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아미크레틴은 임상 2상에서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으며, 올 하반기 비만 적응증 허가를 위한 임상 3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시장의 또 다른 화두는 '근육 보존'이다. 기존 GLP-1 계열 치료제는 체중 감소 과정에서 근육량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차세대 경쟁은 체중 감량 효과뿐 아니라 근육을 얼마나 보존할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리제네론은 GLP-1·GIP 이중작용제 '올라토레파타이드(olatorepatide)'에 근육 손실을 억제하는 항체 치료제를 병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올라토레파타이드는 최근 중국에서 임상 3상에 성공했으며 리제네론은 글로벌 임상 3상 착수를 준비 중이다.
국내 기업들도 삼중·사중작용제 개발 가속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차세대 비만약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한미약품의 행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한미약품은 상용화 단계에 근접한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차세대 삼중작용제 'HM15275'를 동시에 개발하며 비만치료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비만 적응증 임상 3상을 기반으로 상용화를 추진 중인 한미약품의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위고비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에 더해 심혈관·신장 보호 효과와 위장관 부작용 개선 가능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당뇨병 적응증 확대를 위한 국내 3상도 진행 중이다.
차세대 파이프라인인 HM15275는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표적하는 삼중작용제로, 현재 미국에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미약품은 HM15275를 앞세워 체중 감량 효과와 근육 보존을 모두 확보하는 차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GLP-1·GIP·글루카곤·아밀린을 동시에 겨냥하는 사중작용 기전 후보물질 'CT-G32'를 개발하고 있다. 주사제와 경구제 두 가지 제형을 동시에 개발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디앤디파마텍은 GLP-1·GIP 이중작용 기전의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MET-GO' 개발에 나서며 먹는 비만약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140조원 시장 향해 질주…차세대 비만약 경쟁 격화
기업들이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폭발적인 시장 성장세가 있다.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흥행에 힘입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분석업체인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5년 460억 달러(약 67조원)에서 2033년 943억 달러(약 143조원)로 두 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비만이 당뇨병, 심혈관질환, 지방간 등 다양한 대사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로 지목되면서 치료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마운자로가 이중기전의 경쟁력을 입증한 이후 업계의 관심은 삼중·사중작용제를 비롯한 차세대 다중기전 치료제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차세대 후보물질 확보에 나서면서 향후 시장 판도 역시 차별화된 기전과 임상 데이터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마운자로가 비만약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개발 전략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차세대 비만약 시장에서는 단순히 후속 제품을 내놓는 것을 넘어 기존 치료제와 차별화된 임상적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