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순환출자. 3개 이상의 회사가 연결고리 형태의 출자를 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비판할때 빠지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현재 삼성, 현대차 등 재계 1, 2위 그룹을 포함해 약 124개 기업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순환출자 해소가 경제민주화의 주요 과제로 지목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논란도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오는 9월 국회에서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된 법안도 논의될 예정이다. 그 결과에 따라 대기업들의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재계는 우려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신규는 금지..기존 출자 해소는 '입장차'
현재 국회 정무위에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관련, 3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은 모두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과거 대기업의 태동과 성장 과정에서 순환출자 구조가 기여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기존의 순환출자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는 법안에 담긴 견해들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일정기간(3년)내 해소(김영주·김기식 민주당 의원) ▲의결권 제한(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현행대로 존속(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등 각 의원의 주장이 다르다.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쪽은 총수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이른바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개선하고, 경제력 집중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분 1%로 30%를 지배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에서 가공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는 만큼 순환출자 역시 같은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현행법에서 인정받고 있는 부분까지 법 개정으로 소급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대쪽의 논리다. 기업 경영의 안정성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에 따른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 6월에도 순환출자 금지법을 논의했지만 여야간 입장 차를 좁히는데는 실패했다. 다만 견해차가 적지 않았던 일감몰아주기 법안 등이 여야간 협의를 통해 결국 처리된 전례가 있는 만큼 아직 순환출자 금지법안의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재계, 긴장속 주시 "규제도입 신중해야"
재계는 순환출자 금지가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신규 투자 등에 제한을 받게 되는 만큼 결국 고용위축 등 경제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란 입장이다. 또 기존 출자구조 해소가 의무화될 경우 지배구조 문제에 대부분의 비용과 역량이 집중되는 만큼 기업 자체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순환출자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면 경영권 불안으로 인한 방어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결국 투자위축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순환출자 구조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에 대한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적 감시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이우성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의 보고서를 통해 "소유권에 비해 높은 의결권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수단(차등 의결권, 상호출자 등)을 많은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다"며 "특히 순환출자는 기업간 출자관계가 복잡한 유럽국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AXA, 스웨덴의 SHB, 독일의 AMB Generali사 등이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로 얽혀있는 사례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차등의결권 등의 지배권 보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출자규제 강화는 경영권 방어에 있어 해외자본과 비교할 때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다소 완화된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들의 투자의욕 고취를 강조하면서 기류가 변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더라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경우까지 막으면 우리 경제가 무너진다"며 예외규정을 허용할 뜻을 비쳤다.
그는 "최근 해운과 조선 등에서 구조조정 수요가 생기고 있다"며 "증자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환출자의 경우 기존 지분율을 더 확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선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강제하긴 어렵지만 공시의무가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