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미국 다우코닝은 지난 1994년 여성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다. 성형수술에 사용되는 실리콘젤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회사가 알고도 숨겼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4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다우코닝은 피해자들에게 약 32억달러(약 3조500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이를 견디지 못한 다우코닝은 결국 법정관리 개념인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말았다.
이처럼 대기업도 한순간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집단소송제도는 이미 우리나라에 도입돼 있다. 증권관련 사건에 한정해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며 집단소송제를 다른 분야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 소비자 위한 제도..부작용 우려도
집단소송제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 일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을 경우, 그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소비자들도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소비자들의 권리가 강조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집단소송제의 출발은 영국이지만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과 함께 독점금지법 위반행위의 가장 강력한 억제수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당국의 규제가 강한 유럽국가들은 미국식 집단소송제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마찬가지로 과잉집행이라는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이 과징금 등 행정규제를 통해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억제하는 반면 미국은 사적소송이 이런 행정규제를 대신하고 있는 구조도 작용한 결과다.
집단소송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소송 수행상 어려움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반면 대상기업은 소송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손상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또 합의금을 노린 소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들은 집단소송 피소위험에 대비해 사전예방 및 사후보상을 위한 보험지출 등 상당한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며 "이런 비용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돼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업 부담은 '눈덩이'..9월 국회 주목
재계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우려하는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맞물릴 경우 기업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위반시 과징금과 벌금, 손해배상과 함께 집단소송에 휘말릴 경우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고는 하지만 당사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한번의 사건으로 경영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정치권에서도 집단소송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적지 않다.
현재 국회에는 여당과 야당의 법률 개정안이 모두 상정돼 있다. 여당은 담합 등 일정 사건에만 적용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그 대상을 불공정행위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도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재계의 시선은 9월 국회로 옮겨져 있는 상황이다.
집단소송제 등을 경제민주화 관련 국정과제로 추진하던 정부는 속도조절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공정위는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 "법리 문제와 부작용 방지 장치 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뒤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강연에서 "경제민주화 추진과정에서 기업들에게 발생할 비용이 과다하다면 강도나 시기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한경연은 최근 보고서에서 "우리 현실에서는 집단소송보다 공적규제, 자율규제, 대안적 분쟁해결제도(ADR) 등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준사법기관을 통한 집단적 분쟁조정제도를 활성화해 소비자들의 피해구제를 하는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