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토탈이 공식출범하면서 한화의 정유사업 재진출 여부에 정유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화는 이미 정유사업을 경험한 바 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 사업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화토탈은 지난해 중질 나프타 생산을 위해 콘덴세이트 정제설비를 준공, 석유제품 생산량 및 매출액을 늘렸다. 또 전신인 삼성토탈이 알뜰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주유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한화토탈 하루 생산량 15만 배럴.. 경쟁 가능할까
한화토탈은 삼성토탈 시절인 2012년부터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석유공사가 단독 주관한 2부시장에서 휘발유와 경유 공급권을 모두 따냈다. 알뜰주유소 납품은 이익이 크진 않지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한화는 1969년 경인에너지개발을 설립해 정유 및 주유소 사업을 했다. 1999년 외환위기 여파로 현대오일뱅크에 공장과 영업망을 통째로 매각하면서 정유사업에서 손을 뗐지만 한 때 1000여곳이 넘는 주유소가 있었다. 매각 당시에도 김승연 회장이 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서도 석유화학 부문 사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양광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사례 등 사업적 판단에 오너십이 강하게 작용하는 그룹 특성에서도 한화의 정유사업 진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한화토탈은 현재 하루 15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지난해 완공된 방향족(파라자일렌 및 벤젠) 공장에서 콘덴세이트를 정제할 수 있어 항공유와 등유, 경유 등 에너지 제품 생산량도 증가했다. 이로 인해 한화토탈의 지난해 에너지부문 매출액은 2조3223억원으로 전체의 26.4%를 차지했다.
하지만 기존 정유사들과 경쟁하기엔 규모가 작은 편이다. 국내 정유사 중 설비 규모가 가장 큰 SK이노베이션은 원유를 정제해 하루 111만5000배럴의 석유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한화토탈의 7.4배 수준이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각각 78만5000배럴, 66만9000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 정유사업 규모가 가장 작은 현대오일뱅크도 일일 생산량이 39만 배럴 수준이어서 한화토탈의 2배 이상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화토탈이 알뜰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기존 정유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들어오긴 힘들 것”이라며 “현재 정유사업 규모로는 경쟁이 어렵고, 정제시설 등을 확충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어두운 정유시장, 투자가치는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은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각 사의 주력인 정유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떠안았다. 지난해 초부터 정제마진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연말에는 국제유가가 급락해 대규모 재고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 1분기에는 유가 급락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가 늘어 정제마진이 다소 개선됐다. 이에 힘입어 정유사들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당분간 현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정유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정유사업 전망은 어둡다. 중국과 중동에서 자체 정비시설 규모가 늘고 있으며 석유시장에서의 과잉공급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수출실적은 지난해 초 유가 상승에 따른 일시적 증가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 4월 석유제품 수출은 24억9000만 달러에 머물며 최근 5년 동안 가장 낮았다.
▲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
또 정제설비를 증설하고, 고도화시설을 갖추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잔사유고도화 콤플렉스(RUC)와 올레핀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를 준비하고 있는 에쓰오일의 경우, 예상 투자액이 5조원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정유업계에선 한화토탈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정유사업에 진출하기보단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대내외 정제설비 보수가 예정돼있고, 유가 급락에 따른 일시적 수요 증가로 마진이 개선됐다"며 "하지만 국내에서 문 닫는 주유소가 늘어나는 등 시장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아 한화토탈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정유사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화 관계자는 "석유제품 매출이 늘어 주력 사업의 일부로 키우는 것은 맞다"면서도 "정유사업을 본격화하는데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이 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사업 방향이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