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의 고전은 이어졌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은 더 심해졌다. 수출기업이나 내수기업 모두 '어렵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 한 해였다. 하지만 올해도 영광의 얼굴들은 나타났다. 산업분야에서 상징적인 숫자로 통용되는 '영업이익 1조'를 달성한 기업들의 현황을 살펴본다.[편집자]
지난해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한 기업들의 숫자는 전년에 비해 늘어났다. 새로 진입한 기업들이나 다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 예년에 비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외에 질적인 측면에서는 우려가 여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근본적 경쟁력 개선이나 시장 경쟁구도가 달라졌다기 보다 시황 호조에 따라 이익이 늘어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따른 업종별 희비가 교차됐다.
특히 전자와 자동차 등 주력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고, 중공업과 해운 등의 경쟁력 역시 본격적인 회복 조짐을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정유와 석유화학 등이 시황 호조로 높은 수익성을 보였고, 인터넷이나 화장품 등의 분야에서 성장세를 보인 기업들이 나타난 것이 위안이었다. 다만 4차 산업혁명으로 통용되는 세계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한 상황이다.
◇ 전자·자동차 '걱정은 더 커졌다'
지난해에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기록한 회사는 역시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9조240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전년보다 10.7% 증가했다. 하반기 갤럭시노트7 이슈가 불거지며 스마트폰이 부진했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사업이 호조를 보인 결과다.
전년에 비해선 이익이 늘었지만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2013년 수준은 물론 30조원 고지 돌파에도 실패했다. 올해도 부품사업의 호조가 전망되는 점은 다행이지만 스마트폰 등 다른 주력산업들의 전망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기회요인이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국내 대선 등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변수들은 위협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LG전자 역시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했지만 스마트폰 사업의 적자가 커졌다는 점에서 걱정거리는 여전한 상태다. SK하이닉스나 LG디스플레이 등 부품기업들은 하반기 시황호조로 인해 실적이 급반등했지만 여전히 치열한 경쟁구도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우려는 더 크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영업이익은 5조1935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8.3%나 감소했다. 8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2013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시장은 물론 내수시장에서도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차의 부진으로 현대모비스, 현대제철도 제자리 걸음을 했다.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은 2조9046억원으로 전년대비 1.0%, 현대제철은 1조4450억원으로 1.3% 감소했다. 그나마 기아차 영업이익이 2조4614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4.6% 늘어난 것이 위안이다.
◇ 정유·화학은 '함박웃음'
지난해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분야는 정유와 화학이었다. 정유업계 맏형격인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3조2285억원으로 전년대비 63.1%나 증가했다. 지난해 1조9795억원으로 아쉽게 2조원을 넘지 못했지만 올해 단숨에 3조원을 돌파했다.
GS칼텍스 역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2조140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이익규모를 64% 늘렸다. 유가 하락으로 전년보다 매출이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8000억원 이상 늘리며 높은 수익성을 보였다.
에쓰오일도 다시 1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영업이익 1조6929억원을 기록, 창사이후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영업이익은 두배이상 늘었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 1조원대 복귀는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3분기 주춤했던 정유사업이 다시 회복했고, 석유화학이 지난해 내내 견조한 실적을 이어간 덕분이다.
석유화학회사들도 견조한 스프레드 영향으로 이익규모를 크게 늘렸다. LG화학은 지난해 1조99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9.2% 늘어났다. 아쉽게 2조원대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지난 2011년이후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석유화학기업중에서는 롯데케미칼이 가장 빛났다. 지난해 2조547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썼다.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58.1% 증가했다. 주력인 에틸렌 호황기가 이어진 결과다. 정유와 화학기업들의 호조는 올해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 희비도 엇갈렸다
에쓰오일외에 다시 1조 클럽에 가입한 기업들도 있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현대중공업이다. 구조조정 여파로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던 현대중공업은 일단 숫자상으로는 체질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조64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전년의 1조540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라마틱한 반전을 보여준 셈이다. 본업인 조선사업의 구조조정 효과와 현대오일뱅크의 실적 개선 영향이 컸다.
한국타이어도 2년만에 다시 1조 클럽에 재진입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1037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4.7% 증가했다. 초고성능 타이어 비중이 확대되며 수익성이 좋아진 결과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고른 성장세도 이익 확대에 기여했다.
대한항공도 6년만에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1조120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26.9% 증가하며 지난 2010년 1조2358억원 이후 가장 많은 이익을 냈다. 저유가와 함께 영업 호조 등 대외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졌고, 적극적인 신규노선 개척도 성과를 냈다는 설명이다.
포스코 역시 이익규모를 확대했다. 포스코의 지난해 영업이익 2조8443억원으로 전년보다 18% 증가했다. 본업인 철강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고, 부실 자회사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KT와 KT&G 역시 전년보다 이익이 늘었다. KT 영업이익은 1조4339억원으로 11.4% 증가했고, KT&G는 1조4701억원으로 7.6% 늘었다.
반면 1조 클럽을 유지했지만 전년대비 실적이 악화된 곳도 적지 않았다. 전자, 자동차 기업들을 제외하면 SK텔레콤이 대표적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조535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10.1% 감소한 실적이다. 지난 2013년 2조원을 상회하던 SK텔레콤 영업이익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 '업계 첫 1조'..새얼굴들은?
1조 클럽에 새로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은 기업들도 있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매출 4조226억원에 영업이익 1조102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32.7%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최대 규모다.
기존 제조업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영업이익 1조를 넘어선 기업이 나왔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성장은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주력인 광고사업 선전과 글로벌 메신저 '라인'의 호조 등이 성장의 배경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도 화장품업계에서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진입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8.5% 증가한 1조882억원을 기록했다. 주력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이 다양한 브랜드들의 고른 성장으로 영업이익을 늘렸고, 다른 화장품 관련 계열사들도 힘을 보탠 결과다.
지난해 아깝게 고배를 마셨던 현대건설과 효성도 올해는 1조 클럽 가입을 이뤄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조52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6.7%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건설 본체의 사업들이 건실하게 유지됐고,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도 꾸준한 실적을 낸 결과다. 현대건설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효성도 창사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년대비 7% 증가한 1조1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3분기 실적 성장에 제동이 걸렸지만 4분기 이익이 확대되며 가입에 성공했다. 주력인 섬유와 산업자재는 물론 중공업과 화학 등의 분야도 고르게 성장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