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가 창을 꺾었다. 국내 유일의 카프로락탐(나일론 원료) 제조업체 카프로의 현 경영진이 웃었다. 승패의 키를 쥐고 있던 소액주주 상당수가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효성의 예봉은 날카롭지 못했다.
▲카프로의 2016사업연도 정기주주총회가 24일 서울 중구 글로벌센터에서 개최됐다. [사진=이돈섭] |
◇ 소액주주들의 민심은 현 경영진
24일 카프로에 따르면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2016사업연도 결산 정기주주총회에서 박승언 현 대표이사 사장의 재선임 안건이 가결됐다.
주총장은 어수선했다. 당초 10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소액주주주주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명부확인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10시30분이 넘어서야 개회됐다. 외부인 출입이 통제됐고, 효성과 현 경영진 측의 주주들간 고성 소리가 주총장을 삐져나오기도 했다. 예상대로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 결과 주총 참석주식 3020만주(총발행주식 4000만주 중 75.7%)에 찬성 61%, 반대 30%. 대표 연임을 위해 효성에 맞섰던 현 경영진이 주총 보통결의(출석주주의 과반수와 총발행주식의 4분의 1 이상) 요건을 무난히 충족했다.
효성은 최대주주지만 힘에 부쳤다. 소유지분이 11.65% 밖에 안됐다. 2대주주 코오롱인더스트리(지분 9.56%)를 우군으로 확보했지만 20%를 갓 넘겼다. 무엇보다 연임 반대 논리로 내세운 ‘조속한 경영 정상화’가 소액주주들의 전폭적인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카프로는 2012년 이후 5년간 매년 예외없이 영업적자다. 5년간 누적 적자 규모는 3030억원. 2012년 956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난해(2260억원) 4분의 1 토막이 났다. 중국이 석탄 중심의 값싼 원료를 기반으로 대규모 카프로락탐 증설을 주도하면서 무엇보다 중국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카프로의 영업적자는 169억원.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특히 작년 하반기에는 20억원가량 흑자를 냈다.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동절기 석탄가 인상과 환경규제에 따른 중국 카프로락탐 공장의 가동중단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는 게 효성의 판단이다.
◇ 주목받는 효성의 향후 행보
현 경영진은 보유지분이 1%에도 못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78.3%나 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소액주주 대다수가 경영진의 손을 들어준 때문이다. 효성에 맞선 대응 논리가 먹혀들었다는 얘기다.
경영진은 경영위기에 처했을 당시 효성이 카프로락탐 물량 일부를 해외수입으로 대체하는 등 정상화에 역행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고 지적해왔다.
2013년만 해도 25.7%에 달했던 지분을 수년간 지속적으로 내다 판 것도 꼬집는다. 효성은 작년 8월에는 이틀 동안 8.25%를 장내에서 처분하기도 했다. 경영 정상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라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 20억원가량 흑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이 개선되고 있는 또한 “경영진과 직원들이 수년간 정상화에 힘쓴 결과”라는 주장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지만 향후 효성의 행보에 따라 경영 정상화가 순탄치 만은 않을 개연성이 있다. 카프로는 국내 유일의 카프로락탐 제조 업체로소 국내 총수요의 75.6%(2016년 9월말 기준)를 점유한다. 이 중 최대고객이 이번 주총에서 맞선 효성(42.6%)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