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진퇴양난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 4~5일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기업을 불러 미국의 대중압박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이번 면담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주도했고 상무부와 공업정보화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미국이 지난달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돌입하고, 중국 또한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가운데 나온 경고라 한국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26.8%, 수입의 19.9%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국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거둔 매출은 54조8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2%에 달했다. SK하이닉스도 전체 매출의 39%인 15조8000억원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일부에선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생산하는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분야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가장 뛰어난 이익창출력을 보여온 반도체에 먹구름이 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올해 3분기 D램 가격 하락폭을 기존 10% 감소에서 15% 감소로 하향 조정했다. 화웨이 등에 대한 제재가 메모리 수요 둔화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에 대해 반독점 조사를 벌여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가뜩이나 급락세를 보이는 메모리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이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중 하나이고, SK하이닉스 매출의 10~15%가 화웨이에서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모듈 등 부품 계열사의 매출 차질까지 감안할 경우 화웨이를 잃으면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밀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2의 사드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6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은 한국 여행 금지, 통관 지연 등의 압박을 가했다. 중국에서 영업하던 롯데마트는 영업정지를 당한 뒤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완전 철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서부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SK하이닉스는 중국 동부 우시에서 D램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삼성전기는 중국 톈진에 각각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공장을 건설하는 등 중국 곳곳에서 사업을 확대 중이다.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7일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화웨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 국가 통신보안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관리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