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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노믹스 비상]오너십의 종언…그 뒤까지 대비하라

  • 2020.05.15(금) 16:00

[비즈니스워치 창간7주년 기획 시리즈]
승계 이어지며 노출된 경영 불확실성
소유-경영 분리 시대에도 기업탄력 확보해야
"새판 맞는 규제 개혁이 한국판 뉴딜 관건"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난 6일, 삼성그룹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던진 이 한마디는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앞에 나선 가장 큰 이유 역시 창업주 3대인 그까지의 승계였고,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그 과오를 반성하는 자리였다.

재계는 술렁였다. 국내 최대 기업집단 삼성이 '다음 대는 없다'는 선언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대가 열린다는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커다란 변화를 맞을 준비가 얼마나 돼 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피할수 없는 선택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삼성의 계승자가 가족 왕조의 종식을 내세웠다(Samsung heir touts end to family dynasty)'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FT는 "재벌은 총수 일가의 이익이 다른 주주보다 우선한다고 믿는 투자자들에게 비판 받아왔다"고 그 배경을 짚었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의 발언이 "실용적이었다"는 장시진 싱가포르국립대(경영정책학과)의 평가를 전했다. 장 교수는 "한국의 상속세는 창업주 일가가 그들 제국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을 점점 어렵게 해왔다"며 "이 부회장이 여러 방법으로 세금을 피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는 다음 세대에서는 이를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의 기업 환경에서 삼성그룹의 승계 포기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최대주주 할증 포함 60%)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세율이다. 창업주가 50%의 지분을 가졌더라도 3대째로 가면 12.5%, 4대째엔 6.25%밖에 남지 않는 구조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현대차, SK, LG 등 다른 기업집단에서도 총수의 존재가 없는 날을 맞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 '소유-경영' 분리하면

총수 중심의 기업 경영은 우리나라의 압축적 경제성장 역사에서 공과(功過)가 모두 뚜렷하다. 비판도 많지만 성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과(過)는 기업을 이용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부정한 방법으로의 세습에 화살이 쏠린다. 반면 공(功)은 결과로 나타난 성장성과 발전속도에 있다.

최근까지도 공을 무시하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매년 규제대상으로 꼽은 기업집단의 자산 변동을 보면, '총수 있는 기업집단'의 지난 4년 평균 자산증가율은 6.5%다. 이는 '총수 없는 기업집단'의 2.4%를 크게 앞선다. 오너십(ownership)이 사업 몸집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더 효율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의 오너십 중심 성장 패러다임은 이렇게 끝이 보이고 있다. 삼성이 논란 속에 먼저 주목 받았을 뿐이다. 재계 한 인사는 "이미 창업주 3~4대 경영권 승계에 이른 우리나라 기업집단 상당수가 총수가 없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가보지 않은 길

이는 우리 경제가 맞게 될 본질적 변화다. 관건은 이런 변화가 우리 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는 데 있다. 기업의 중심이던 기업인의 상속 재산이 감소하고 경영권 승계가 불확실해지는 것은 기업과 경제의 성장 동력 중 하나였던 '기업가 정신'의 감퇴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 민주화 측면에서 재벌 중심의 구도를 벗어나는 것 역시 시대적 요구였다. 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에 맞춰 속도 있게 경영 비전을 세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새롭게 기업가 정신을 고취할 구심점이 마련돼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오너십'을 대체할 경제적·사업적 유인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안으로 꼽히는 전문경영인 체제나 공적 관리에도 한계가 뒤따른다. 경영 판단이 근시안적이거나 정무적일 수 있다는 지점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을 보면 종전의 추진력과 역동성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전문경영인은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어 먼 미래를 내다본 연구개발이나 과감한 투자에 적극성을 띄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새 판 걸맞는 규제혁신 필요

실제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맞게될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기업 경영 안정성을 보호해 기업 활동에 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경제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지난달 말 '기업 경영활동 매진을 위한 10대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여기에는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 ▲대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3%룰) 폐지 ▲차등의결권제 도입 ▲기업지배구조관련 규제기준 상향 등이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제안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갑작스러운 확산으로 사업적 리스크가 전례없이 커진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을 통해 '한국판 뉴딜'을 내세우며 코로나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다만 새로 등장한 거대 여당 중심의 21대 국회 방향성이 종전처럼 '경제민주화' 중심의 규제 강화에 치우치거나, 규제 완화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부당 내부거래, 총수 사익편취 등 기업인의 불법행태는 종전처럼 엄정하게 다루되,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는 기업 규제는 입법부가 과감히 완화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가 뉴딜을 통해 제2의 도약을 하려면 근본적인 산업 생태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규제를 개혁하고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며 기업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기업들이 자유롭게 미래산업을 이끌며 고용을 창출하게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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