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증가와 글로벌 전력망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사상 전례 없는 전력 쇼티지(공급 부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건데요.
이를 틈타 국내 전선 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축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이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 전력망의 심장부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역대 최대 수준의 수주 잔고와 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생산 기지 구축과 설계·시공을 아우르는 토탈 솔루션 역량을 전면에 내세우며 글로벌 전력 인프라 재편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늙어버린 美 전력망… LS 모자 연합이 동력 채웠다
글로벌 AI 열풍의 진원지인 미국이 한국 전선사들의 최대 무대로 떠오른 배경에는 현지 전력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극심한 공급 병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전력망 인프라의 70% 이상은 설치된 지 30년이 넘은 초고압 송전망으로, 이미 수명 한계에 도달했는데요. 여기에 전기 먹는 하마인 AI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까지 연동해야 하다 보니 전력망을 통째로 갈아 끼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거죠.
반면 미국 현지의 케이블 생산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로 중국산 수입마저 원천 차단되면서 결국 기술력과 납기 신뢰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이 독점적인 수혜를 누리는 구조가 짜여졌습니다.
이 기회를 가장 빠르게 움켜쥔 LS전선은 과감한 북미 현지화 베팅과 독보적인 공급 능력을 앞세워 시장 주도권을 선점해 나가고 있는데요. LS전선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7조5882억원, 영업이익은 2798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수주잔액 역시 전년 대비 약 22% 급증한 7조63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죠.
본사가 미국 버지니아주 해저케이블 공장(LS그린링크) 설립에 6억8100만 달러(한화 약 1조원)을 베팅하고 멕시코 생산법인 LSCMX에 2300억원을 투입해 미주 통합 전진기지를 구축하는 등 굵직한 인프라 동맥을 뚫어내면 자회사들이 이를 채워주는 연합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모회사의 북미 진격에 발맞춰 실질적인 빅테크 심장부를 공략하는 주역은 자회사 가온전선입니다. 가온전선은 이달 16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미국 자회사 LSCUS의 노스캐롤라이나주 타보로 공장에 5000만 달러(약 760억원)를 투자해 송전 케이블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기로 했는데요.
LSCUS는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 A사와 향후 5년간 최소 4조원대 이상의 대용량 전력 시스템인 버스덕트(Busduct)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잭팟을 터트렸습니다. 버스덕트는 데이터센터 내부에서 전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두꺼운 도체 배전판을 뜻하는 고부가 제품이죠.
가온전선은 지난 18일에도 미국 태양광 발전단지에 수백억원 규모의 송전용 케이블 공급을 성사시키며 대미 수출액을 지난해 약 1000억원에서 올해 약 2000억원 규모로 2배 이상 끌어올릴 방침입니다.
김형원 LS전선 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은 "AI 시대의 경쟁력은 결국 전력 인프라에서 나온다"며 "LS전선은 AI 데이터센터 송전망부터 내부 배전 솔루션까지 아우르는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재무 족쇄 풀고 후발 격차 좁히기
LS전선이 모자 연합의 전방위 라인업으로 시장을 촘촘히 압박한다면 대한전선은 북미 전력청 중심의 초고압(EHV) 시장에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홀로 책임지는 독자적인 풀 턴키 역량으로 매서운 추격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한전선이 북미 영토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과거의 재무 리스크를 털어낸 체력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호반그룹 편입 이후 부채비율을 117.2%까지 대폭 낮추고 유동비율을 143.7%로 안정화하면서 미국 현지 인프라 확보와 대형 수주전에 지를 수 있는 든든한 펀더멘털이 구축된 덕분입니다.
실제 대한전선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834억원, 영업이익 604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수주잔고는 2021년 말 대비 3.5배 이상 확충된 3조8273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넘치는 체력의 상당 부분은 북미 노후 전력망을 지중(地中) 초고압선으로 통째로 교체해 주는 프로젝트 매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초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지역에서 따낸 1000억원 규모의 230kV 초고압 전력망 사업처럼 설계, 생산, 관로 공사 및 시공까지 현지 전력청의 까다로운 기준을 원스톱으로 맞추는 턴키 솔루션이 북미 시장을 관통한 건데요.
미국 시장에서 쌓은 단단한 신뢰도는 글로벌 무대로 이어져 지난 8일 싱가포르 전력청으로부터 1400억원 규모의 고난도 O.F(절연유를 채워 성능을 유지하는 초고압 케이블) 프로젝트를 따냈고 영국 스코틀랜드 등 유럽에서도 상반기에만 1000억원에 달하는 신규 수주를 쓸어 담았습니다.
특히 지난 17일 한전의 1463억원 규모 500kV HVDC 동해안-동서울 건설공사까지 수주하며 직류송전 분야의 독보적 레퍼런스를 장착한 대한전선은 이를 무기로 향후 미국 연방정부가 발주할 대형 HVDC 인프라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현재 충남 당진에 640kV급 HVDC 해저케이블 생산이 가능한 2공장을 짓는 동시에 최근 1만톤급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인 '스칸디 커넥터'호까지 추가 확보하며 생산부터 운송, 바다 밑 시공까지 자급자족하는 독자 선대를 띄운 것도 북미와 글로벌 대형 송전망을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노림수인 셈입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초고압 케이블을 중심으로 수주잔고 확대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대한전선 역시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북미 투자 확대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며 "북미 초고압 케이블 시장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의미 있는 수준의 공급 확대는 필수적"이라고 진단했고요.
이어 "오는 2028년 상업운전이 시작되는 당진 해저 케이블 공장 가동과 베트남·남아공 등 해외 생산법인 증설, 포설선 구매를 통해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와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에 대응할 준비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며 "전력망 공급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발주자인 대한전선 입장에서 해저 케이블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분석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