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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노믹스 비상]대형마트는 적인가…낡은 규제 틀 바꾸자

  • 2020.05.18(월) 11:24

[비즈니스워치 창간7주년 기획 시리즈]
복합쇼핑몰 규제, 與 공약 1호…대형마트 규제도 연장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 등 기존 업체 규제에만 몰두
"온라인 시장 성장 등 새로운 흐름에 맞춰 개선 필요"

스타필드 하남. /이명근 기자 qwe123@

복합쇼핑몰을 도시계획 단계부터 입지 제한과 함께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무일을 지정하도록 하겠다.

총선을 10일가량 앞둔 지난 4월 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스타필드나 롯데몰 같은 복합 쇼핑몰의 출점과 영업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 방안은 양당이 함께 내놓은 '공동 공약' 1호로 이름을 올렸다. 

두 당은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했다. 이후 두 당이 합당하면서 이제 '슈퍼 여당'이 됐다. 두 당이 한목소리로 가장 앞세워 낸 공약이니만큼 이 방안은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상 3000㎡ 이상 대형마트는 매월 공휴일 중 2일간 강제로 휴무해야 한다. 여당은 이를 스타필드나 롯데몰 등 복합 쇼핑몰로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총선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봤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현재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은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으로 구조조정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족쇄를 더 조이겠다고 하니 산업 자체가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정권과 여당의 규제 강화가 이번 법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유통 대기업을 더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전통상업보존구역 관련 규제 존속 시한을 올해 11월 23일에서 오는 2023년 11월 23일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규제에 따르면 전통상업보존구역 1㎞ 이내에서는 대형마트를 새로 만들 수 없다. 애초 이 규제는 지난 2015년 11월 일몰(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19대 국회에서 올해 11월까지 5년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된 바 있다. 이후 다시 한번 관련 규제를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일몰시한 연장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는 무려 13년간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직원들이 쇼핑카트에 항균 필름을 부착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받으면서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의 경우 오프라인 점포 휴일에는 온라인 배송도 멈춰야 하는 규제에 묶여 있는데, 이를 당분간 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쿠팡 등 대형 온라인 쇼핑 업체의 경우 휴일 없이 배송이 가능한데 유독 대형마트만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되레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자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여전히 대형 유통업체들을 소상공인을 어렵게 하는 적(敵)으로만 보는 '시대착오적' 시각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이런 인식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백화점과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에서는 대부분 쓰지 못하도록 했다. 반면 편의점이나 다이소, 이케아 등 역시 대기업이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사용할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엔 중소기업에서 만든 물건도 있고 신선식품의 경우 영세한 농가나 어가에서 수확한 제품들도 많다"면서 "결국 이런 분들은 판매 채널이 대형마트라는 이유만으로 재난지원금의 혜택을 못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주변 상권에 피해를 준다는 오래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 백화점 등 대형 점포가 골목상권을 멍들게 한다는 논리는 과거에는 맞았을지 몰라도 이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해 내놓은 '대규모 점포 규제효과와 정책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대형마트가 성장하면서 전통시장의 소매판매액 비중이 줄었지만,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대형마트와 전통 시장의 판매액이 동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소매업태별 소매 판매액 비중'은 대형마트(25.7%)가 전통시장(11.5%)을 크게 앞섰지만, 2017년에는 대형마트(15.7%)와 전통시장(10.5%)이 모두 감소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의 경우 28.5%로 급증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복합쇼핑몰이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유통학회는 스타필드시티 위례가 문을 연지 1년 만에 반경 5㎞ 내 상권 매출이 이전보다 6.3%가량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특히 소비자들은 복합쇼핑몰에 방문한 날 주변 상권도 동시에 이용하면서 낙수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스타필드시티 위례 이용 당일 반경 3㎞ 내 점포 동시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의류점 경우 35%, 음식점은 20%를 동시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기존의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TV홈쇼핑 업계에서도 나온다. 

중소기업 의무편성비율과 관련한 규제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TV홈쇼핑은 지난 1995년 '중소기업 유통 활성화'를 명분으로 시작된 산업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방송의 50% 이상을 중소기업 상품에 편성하고 있다.

문제는 홈쇼핑에 입점하는 업체가 전체 중소기업 중 0.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중소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여러 홈쇼핑 채널에 중복 입점해 있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업체들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 제품 유통을 활성화하자는 기존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TV홈쇼핑 업체들이 IPTV 등 유료방송사에 내는 송출 수수료가 빠르게 급상승하는 지금의 구조 역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TV홈쇼핑 업체들은 유료방송사의 채널을 사용하는 대가로 송출수수료를 낸다. 그런데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이 수수료가 빠르게 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홈쇼핑 업계가 IPTV 3사인 KT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낸 송출수수료는 지난 2014년 1754억원에서 2018년엔 7127억원으로 4년 만에 300%가량 급증했다. 송출수수료가 늘어날수록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유통산업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규제의 패러다임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기환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특정 소매점의 영업을 제한하는 규제는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면서 "소규모 전통 상점을 보호하려는 정책은 기존 상점의 퇴출을 지연할 뿐 유통 산업 구조 전환의 큰 흐름 막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단순히 점포의 규모만 비교해 규모가 큰 곳만 규제하는 방식은 지금의 유통 산업 흐름에는 맞지 않다"라면서 "이미 온라인 업체들이 또 하나의 '점포' 역할을 하고 있고 경쟁력도 커지고 있는 만큼 이에 맞춰 관련 정책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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