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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격돌]삼성, 더 중요해진 공급망 관리

  • 2020.06.15(월) 10:00

퀄컴, 애플 등 고객사 접근성 부각
사업부 독립 등 불안 해소 방안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미국, 중국 가운데 선택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때리기를 본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가 한 말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어느 정보기술(IT) 제품에나 두루 쓰이는 범용 제품이다. 특정국 기업을 콕 찝어 맞춤형으로 제작할 필요가 없이 공용 시장에 풀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강대국간 충돌 등과 같은 지정학 위기에 휘말릴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와 상황이 다르다. 정보를 처리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같은 로직 반도체는 특정 기업 제품의 내부 디자인, 주변 부품, 소프트웨어 등이 섬세하게 고려돼야 한다. 그만큼 지정학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더 크다. 메모리에 치중하는 반쪽 1등을 넘어 2030년까지 로직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포함해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석권하는 '완전한 1위'를 목표로 하는 삼성전자에게 놓여진 과제다. 

◇ '접근성을 키워라'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육성하기 위해 미국 고객사와 접근성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고집하며 국내외 기업들의 생산기지 유치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해외 생산기지 건설이 더 중요해졌다고 본다.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회로 선폭 초정밀 반도체 잠재 고객사 인텔, 애플 등 미국 반도체 '큰손'들을 잡는 와중에 '정부 입김'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추가로 제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는 미국에서 많은 이익을 얻는다. 올해 2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갈 5나노 공정에서 애플, AMD 등 고객사를 여럿 획득하는 등 매출의 60% 이상을 초정밀 회로 반도체를 요구하는 미국 기업에서 거둔다. TSMC는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커지자 지난달 14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약 14조5000억원)을 들여 5나노 선폭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는 등 미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류더인 TSMC 회장은 10일 최근 외신에 따르면 "최악의 상황에 이미 대비하고 있다"며 화웨이와 거래관계가 끊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미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미국 주요 기업과 선폭 10나노 반도체 거래가 드물기에, 현지 기업들을 잡아야만 파운드리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삼성은 TSMC와 더불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7나노 이하 공정을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 Violet) 공정으로 생산 가능하지만, 파운드리 1위 TSMC와 점유율 격차가 크다.

사실 반도체 수급자가 생산지를 가까이 두는 것을 원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이 원자재 수급, 정치적 문제 등 돌발 이슈로 멈춘다면 다시 가동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고객사는 문제가 있는 지역이 아닌 안정적인 환경이 담보되면서 가까운 곳에 반도체 기지가 위치하는 것이 운송비 절감, 대외 변수 관리 차원에서 유리하다. 

일례로 1997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문을 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대표적이다. 이 공장은 미국 고객사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삼성전자의 첫 해외 반도체 기지다. 당시 고객사에서 북한 위험을 이유로 자국내 생산기지 건설을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도 평택에 삼성전자가 10조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분히 총수 리스크를 의식한 행보"라며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 오스틴 공장 증설 등을 추진했어야 하는게 정답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며 "미중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지 불확실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요처를 중국, 미국에 집중할지 각각에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며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 비상계획을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결국 신뢰성'

접근성과 별개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고객 신뢰성을 더 보강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대표적으로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필요성이 재차 거론된다. 스마트폰 등 완제품 경쟁사들이 설계도 유출을 우려해 삼성전자와 10나노 이하 파운드리를 거래하는 것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그 배경이다.

고객사의 우려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태생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내 회로 설계 전문시스템LSI사업부 안에 파운드리팀을 지녔다. 이후 2017년 들어 파운드리팀을 사업부로 분리했지만, 여전히 같은 부문 안에 설계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가 같이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고객사가 많다는 전언이다.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로 분사하거나 상장을 추진해 고객사와 지분을 나눠갖는 것이 한 해법으로 거론된다.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필요성은 애플의 행보에 비춰봐도 설득력 있다. 애플은 꾸준히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생산을 삼성에 의뢰했다. 파운드리 부문 최대 고객사였다. 하지만 2014년 출시된 아이폰6 시리즈부터 탑재된 A8부터 TSMC에 위탁했다. 삼성이 14나노 양산을 목전에 두는 등 기술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지만, 20나노대에 머문 TSMC를 굳이 선택한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각 회사의 독특한 설계 방식 등이 더해져 시스템 반도체 보안이 중요해진다"며 "파운드리 육성 차원에서도 고객사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분사 필요성이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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