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다음 달 HMM(옛 현대상선)에 인도되는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내부를 1시간30분가량 둘러봤다. 러시아 최대 항구 도시명을 딴 이 선박은 20피트(6미터) 컨테이너 박스 2만4000개를 한 번에 싣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이다.
승선 전에 삼성중공업 측에선 3가지를 당부했다. "이동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마라. 계단을 오르내릴 땐 꼭 가드를 잡아라. 그리고 엔진룸에서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즉시 삼성중공업 구조대에 전화하라." 비상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한 뒤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에 승선했다.
조선소 '안벽(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구조물)'에 붙어 있는 'HMM 상트페테르부르'의 '포트'(선박의 좌현)쪽 입구를 통해 들어간 곳은 엔진룸이 있는 '써드 데크(third deck)'였다. 정말 길을 잃어버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엔진룸엔 메인 엔진과 발전기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작년 8월 건조에 들어간 이 선박은 마무리 성능 점검 중이다. 엔진룸에선 십여명의 인부가 전기 배선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배의 크기와 작업단계에 따라 다르지만 한 선박의 건조과정에선 하루에 1000명, 마지막 성능 점검 땐 600명 정도의 인력이 투입된다고 한다.
이동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는 한눈을 팔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공사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이 메인 엔진은 배를 최고 속도 22.5kts(시속 41.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길이 400m, 폭 61m, 높이 33.2m에 달하는 거대한 선박에 컨테이너 2만4000개를 다 싣고도 시속 40km가 넘는 속도를 내기 위해 이 선박은 11기통 메인엔진을 장착했다. 발전기는 메인엔진 좌현에 3개, 우현에 2개가 각각 배치됐다.
이날 선박 소개를 맡은 김경하 삼성중공업 과장은 "모터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장난감 배와 원리가 똑 같다"며 "메인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면 배가 앞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엔진룸이 위치한 '써드 데크'보다 한 층 높은 '세컨드 데크(second deck)'에는 '엔진 컨트롤 룸(ECR)'이 있다. ECR에선 메인엔진 시동을 걸고 '클릭' 한번으로 밸브를 여닫을 수 있다.
ECR에선 1~2주 앞으로 다가온 시범 운항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알람이 울리는지 점검하기 위해 일부러 오작동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이날 선박 곳곳에선 김 과장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알람이 계속 울렸다. 선박이 잘 만들어졌다는 '신호'였다.
엔진룸과 ECR 다음으로 황산화물 저감장치(SOx scrub)를 보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엔진 가동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고온의 가스 폐열(Exhaust Gas)에서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설비로 이 선박의 핵심기술이다.
황산화물 저감장치의 맨 꼭대기까지 가파른 170여개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김 과장은 "지금 11층 정도 높이까지 올라온 것"이라고 전했다. 황산화물 저감장치는 교각을 받치는 기둥의 둘레 정도 되는 크고 긴 '쇠파이프 굴뚝'처럼 생겼다. 총 3개의 '쇠 굴뚝'으로 이뤄졌는데 중앙 '쇠 굴뚝'은 메인엔진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양 쪽 두 개는 발전기와 보일러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각각 제거한다.
엔진룸과 황산화물 저감장치가 있는 '하부층'을 둘러본 뒤 '어퍼 데크(upper deck)'로 나오니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어퍼 데크'는 2만4000개의 컨테이너가 쌓이는 거대한 갑판으로 이 배의 갑판 넓이는 축구장의 4배보다 크다.
선미(배의 뒷부분)에서 '어퍼 데크'를 200미터 가량 걸어 승무원들이 생활하는 '거주구'와 '조타실'이 있는 10층 높이의 건물에 닿았다.
거주구의 낮은 층엔 하급 선원이 생활하는 작은 방이, 높은 층엔 고급 선원이 사는 넓은 방이 위치한다. 원룸과 같은 기관수의 방과 달리 선장이 머무는 방은 침실과 거실이 분리됐고 화장실엔 욕조가 설치돼 있었다. 이 선박에는 선장과 1·2등 항해사, 기관장, 갑판장, 조리장, 조리수, 갑판수, 기관수 등 총 23명이 승선한는데 맡은 임무와 직책에 따라 방의 크기와 위치, 창문의 개수가 달랐다.
거주구가 있는 건물 맨 꼭대기엔 조타실이 있다. 조타실에는 레이더, 내비게이션 기능을 장착한 전자해도, 자동과 수동으로 배를 움직이는 오토파일럿, 엔진과 발전기 등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보는 모니터 등이 배열돼있다.
김경하 과장은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찍으면 길을 안내하는 차와 같다"며 "배가 갈 트랙을 만들어 놓으면 그 코스에 따라 움직인다"고 전했다. 이어 "근해에서는 매뉴얼(수동)로 조종하고 먼 바다로 나가면 트랙을 잡아두고 자동으로 운항되는 오토 파일럿 기능이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선박의 모든 '장비를 살려보는' 이번 점검이 끝나고 나면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는 대한해협으로 시운전에 나선다. 5일간의 시운전이 끝난 뒤 HMM은 이 선박을 인도받아 전 세계 바다 곳곳을 '트랙'으로 잡고 항해하게 된다. HMM은 '상트페테르부르크'호를 비롯해 최근 건조된 초대형 선박의 명칭을 유럽의 항구 이름으로 짓고 있는데 "유럽항로에서 잃어버린 경쟁력을 되찾아 해운 재건을 이루겠다"는 취지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