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정숙성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장점인 세단보다 실용성을 갖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매력에 빠진 소비자가 많아지면서다. 특히 올 상반기엔 SUV가 세단의 판매량을 추월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차박(차에서 잠자는 캠핑)'이 인기를 끌면서 판매가 늘었고 무엇보다 단점으로 꼽혔던 연비·승차감 등의 문제를 개선한 영향이 컸다.
올 하반기에도 SUV 신차가 잇따라 출시된다. 싼타페 하이브리드(HEV), 스포티지 등 전통의 강자들이 선보이고, 전기차나 경차 등 다양한 SUV들도 잇따라 나오면서 바야흐로 SUV 전성시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연비·이미지 개선…세단 판매량 추월
SUV의 가장 큰 단점은 연비였다. 차체가 무거운 탓에 연비 효율이 떨어졌다. 쉽게 말해 '기름 많이 먹는 차'란 얘기다. 그러나 기술이 SUV 단점을 보완했다. 과거 트럭 플랫폼에서 제조하던 SUV를 세단 플랫폼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차량의 골격을 이루는 프레임 무게도 가벼워졌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전기차 SUV까지 출시되면서 연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게 됐다.
이미지도 개선했다. SUV는 그동안 투박하면서 무거운 느낌이 주류였다. 군용차에서 출발한 SUV는 산악지대, 비포장도로 등 험지 주행을 위해 탄생한 차량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나온 SUV는 세련된 외관 디자인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도시에 맞게 고급화한 SUV도 늘었다. 현대자동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GV70, GV80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도 SUV의 인기를 가속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차박이 대세로 떠올랐다. SUV의 가장 큰 장점인 넓은 차내와 트렁크 공간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연료 효율·이미지 문제가 사라지고 코로나19 효과까지 붙자 SUV 판매량은 증가했다. 산업통산자원부 통계에서 내수 시장에서 판매된 국산 승용차 중 SUV의 비중은 2018년 40.1%, 2019년 44.6%, 작년 47.6%로 높아졌다. 작년 세단의 비중은 47.8%. 나머지 4.7%는 미니밴(CDV)였다.
SUV의 비중은 올 상반기엔 세단을 추월했다. 산자부 통계에 자료를 제공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SUV 판매는 전년동기 대비 6% 증가한 39만7000대였고 세단은 11.1% 감소한 38만3000대에 그쳤다.
전기차·경차 SUV, 하반기 출동
현대차는 지난 7월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싼타페 하이브리드의 공인 연비는 13.1~15.3km/ℓ다. 중형 이상 가솔린 세단보다 높은 연비다. 지난달 싼타페 판매량은 총 4452대를 기록했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하이브리드 모델(2060대)이었다.
현대차는 경차급 SUV인 '캐스퍼(프로젝트명 AX1)'도 올 4분기 출시할 계획이다. 캐스퍼는 현대차 SUV 라인업 중 가장 작은 SUV다. 지난 2002년 아토스를 단종한 현대차가 19년 만에 내놓는 경차이기도 하다. 생산은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맡았다. 지난 4월 광주공장을 준공한 GGM은 연간 7만대 생산을 목표로 AX1를 제작한다.
전기차 SUV도 나온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올 하반기 첫 전용 전기차 'GV60(프로젝트명 JW)'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모듈형 전기차 플랫폼)로 제작된 GV60은 1회 충전 시 최대 430km까지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최근 신형 스포티지를 출시했다. 이번 신형 스포티지는 2015년 기존 모델 출시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5세대 모델이다. 사전계약 기간에만 총 2만2195대가 판매됐다. 스포티지와 함께 준중형 SUV로 분류되는 투싼이 올해 1~7월 3만2363대가 판매된 것을 고려하면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번 신형 스포티지 출시로 그동안 독주했던 투싼과 경쟁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오는 4분기엔 친환경 SUV인 '니로' 2세대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니로는 현재 품질 점검을 위해 국내·외에서 각종 테스트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에선 아직 공식적인 출시일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늦어도 올해 4분기엔 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난이 깊어가는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SUV를 강화하고 있다. 세단보다 수익성이 좋다는 점도 이들에겐 매력 포인트다. 최근 출시한 차종도 모두 SUV다. 르노삼성차는 지난 6월 XM3를 선보였고 한국GM 역시 트레일블레이저 등 SUV 모델에 주력하고 있다. 본격적인 판매를 앞두고 있는 한국GM의 첫 전기차 SUV 모델 '볼트 EUV'도 있다.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쌍용차는 올 하반기 첫 전기차 SUV '코란도 e모션'을 내놓을 전망이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지만 유럽 진출을 오는 10월 앞두고 있다. 최근엔 새롭게 정립한 디자인 비전과 철학이 담긴 차세대 SUV 'KR10(프로젝트명)'를 공개했다. SUV의 기존 이미지인 강인함을 살려 차별성을 두겠단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