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전자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이미 수많은 전자기기를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내일이면, 다음 달이면, 내년이면 우리는 또 새로운 제품을 만납니다. '보니하니'는 최대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전자기기를 직접 써본 경험을 나누려는 체험기입니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느낀 새로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독자 여러분께 전하려 합니다.
지난 2020년 애플이 4년 만에 선보인 아이폰SE 2세대는 출시 후 2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개 모델 중 아이폰SE 2세대가 8위에 올랐다. 최신 기기들이 상위권의 줄을 잇는 가운데 출시 2년 차 제품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관련기사: 공개임박 아이폰SE3, 삼성 GOS 논란 득볼까(3월8일)
올해 애플은 2년 만에 3세대 제품을 내놨다. 작년 출시된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같은 '두뇌'를 탑재했다는 것만 봐도 SE 제품으로 또 한 번 '재미를 보겠다'는 애플의 의지가 느껴진다.
다만 태평양처럼 넓은 베젤(테두리)을 실물로 마주한 순간 기대감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이 카메라가 된 요즘 같은 시기에 싱글(1개) 카메라를 유지한다는 점도 다소 놀라웠다.
아이폰SE 3세대는 작은 사이즈와 '물리 홈 버튼'을 포기하지 못하는 오랜 애플 유저들을 위한 선택지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닌 애플의 제품을 합리적 가격대로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나, 아이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를 외면할 수 없는 부모에게는 구원과도 같다. 애플로부터 아이폰SE 3세대 제품을 대여해 닷새 동안 사용해 봤다.
추억을 되살리는 '어게인 2016'
아이폰 SE 3세대의 첫인상은 '복고'였다. 마치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추억에 젖어 몇 년 전까지 사용했던 아이폰7을 꺼냈다. 2016년 출시돼 인기를 모았던 유광의 '제트 블랙' 색상이다. 같은 블랙이지만 색상 차이는 있었다. 아이폰SE 3세대는 블랙 색상에 '미드나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에 걸맞게 온전한 블랙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과 같은 짙은 남색에 가깝다.
색상은 달랐지만 외형 디자인은 똑같았다. 아이폰7에 사용했던 케이스를 끼웠더니 딱 맞았다. 아이폰SE 3세대는 아이폰7, 아이폰8, 아이폰SE 2세대와 디자인이 같다. 4.7인치의 아담한 화면에 전원, 볼륨 버튼의 위치도 모두 같기 때문에 액세서리가 모두 호환 가능하다.
이전에 해당 모델을 사용했던 이들이라면 액세서리 호환이 절약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스마트폰 모델과 디자인이 같다는 것은 넓은 베젤도 그대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폰SE 3세대는 위아래 넓은 베젤이 있다. 최신 스마트폰에 비해 페이지당 텍스트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영상 시청 시 몰입감도 떨어졌다.
넓은 베젤 덕분에 화면 아래 자리 잡은 물리적 홈 버튼은 꽤 반가웠다. 지문 인식으로 화면 잠금을 풀어보니 인식률은 여전히 좋았다. 애플이 최근 iOS(애플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통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얼굴인식이 잘될 수 있게 업데이트만 하지 않았어도,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뻔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탑재하는 요즘 LCD(액정표시장치)를 선택했다는 점도 아쉬운 지점이다. 평상시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흰 화면의 영상을 비교해 보니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그런데도 아이폰SE는 마니아층이 뚜렷한 편이다. 실제로 작년 아이폰SE 2세대를 구매해 사용하고 있는 지인에게 SE 모델을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작고 가벼우면서 물리적 홈버튼이 남아있는 게 SE만의 장점"이라며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은 카메라가 많아서 징그럽고 화면도 'M자 탈모(스마트폰 상단의 노치)'보다는 작은 게 낫다"고 자평했다.
겉모습에 실망하지 마세요
복고 느낌이 나는 외관에 다소 실망했을 수 있지만, 속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셋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폰SE 3세대는 A15 바이오닉을 탑재했다. 이는 최신 제품인 아이폰13에 들어간 칩셋과 같다. 겉모습만 보고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다.
아이폰SE 3세대로 고사양 게임인 '원신'을 플레이해 보니 원활하게 실행됐다. 캐릭터의 움직임을 실감 나게 볼 수 있었다. 1시간 이상 게임을 해도 발열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A15 바이오닉의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ISP)는 카메라 성능도 높였다. ISP는 동영상 품질을 개선해 주고, 머신 러닝이 적용된 딥퓨전은 사진의 질감과 디테일을 살려준다. 또 스마트 HDR4는 색상·대비·노이즈를 조절해 준다는 것이 애플 측 설명이다.
실제로 카메라 기능을 사용해 보니, 사진 촬영한 뒤 후처리 능력이 좋아진 느낌이다. 같은 사양의 싱글 카메라를 탑재한 아이폰 SE 2세대와 동일한 사물을 촬영했을 때, 3세대의 카메라가 더 섬세한 부분까지 잡아냈다. 트리플(3개) 카메라를 탑재한 아이폰12 프로와 비교해 선명도는 다소 떨어졌지만 빛 번짐은 더 적었다.
SE 사용자가 감수할 것들
다만 최신 칩셋이 싱글 카메라의 단점을 모두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인물사진 모드에 한계가 있다. 인물사진 모드를 활용하면 특정 인물·사물을 인식해 자동으로 주변 배경을 흐리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아이폰SE의 경우 인물, 즉 사람이 아니면 인식이 불가능하다. 평소 음식 사진을 찍을 때 인물사진 모드를 애용하고 있는 입장이라, 사물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야간 모드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SE 모델의 한계로 꼽힌다. 아이폰12 프로와 아이폰SE 3세대로 어두운 산책로를 촬영해 보니 확실히 차이났다. 아이폰12 프로는 자동으로 야간 모드를 실행해 사물을 또렷하고 밝게 찍어냈다면, 아이폰SE 3세대로 찍은 사진은 더 어둡고 선명도도 떨어졌다.
최신 칩셋은 배터리 시간에도 영향을 줬다. 아이폰SE의 큰 장점인 무게는 전작 대비 줄었지만, 칩셋의 효율성 덕에 오히려 배터리 수명은 늘어났다. 아이폰SE 2세대는 148g이었는데, 3세대는 144g으로 약간 줄었다. 이는 아이폰13 미니(140g)와 비슷하면서, 폴더블폰인 갤럭시Z폴드3(271g)의 절반 수준이다. 평소 200g대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아이폰SE를 들어보니 손목에 자유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배터리 사용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아이폰SE3 세대의 동영상 재생 시간은 최대 15시간이다. 전작 대비 2시간 늘어난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보조배터리나 추가 충전 없이 하루 종일 사용이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환경에선 조금 다른듯 했다. 3세대로 유튜브 영상을 5시간 정도 틀어놨더니 배터리는 81%에서 13%로 줄었다. 셀룰러 네트워크, 위치, 신호 강도, 기능 구성, 용도 등에 따라 배터리 소모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아이폰SE 유저에게 보조배터리는 숙명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