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제약기업들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NASH는 가장 흔한 만성 간질환으로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된 치료제가 없어 시장성이 열려 있는 분야다.
한미약품‧유한양행 등 기술수출 성과
국내에서 NASH 치료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한미약품과 HK이노엔이다.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 약효지속 기반 기술인 랩스커버리(LAPSCOVERY)을 적용해 3개의 NASH 치료제 후보물질을 연구개발 중이다. HM15211(LAPS Triple Agonist)와 에피노페그듀타이드(LAPS-GLP/GCG) 2개 신약 물질은 국내외에서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HM15211의 경우 2020년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속심사대상(Fast Track)으로 지정되면서 개발 성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HM14320(LAPS-Glucagon Combo)는 지난 2020년 MSD에 최대 8억600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HK이노엔의 'IN-A010'은 헝가리‧폴란드‧스페인 등 유럽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으로 올해 말에 완료를 앞두고 있다.
유한양행은 4개의 NASH 파이프라인을 연구개발 중으로, 잇따라 기술수출 성과를 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유한양행은 YH25724을 지난 2019년 베링거인겔하임에 8억7000억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후 지난해 글로벌 임상1상에 돌입했다. 계약 당시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 4000만 달러를 받았고 개발단계가 진척되면서 마일스톤 1000만 달러를 추가로 수취했다. 이밖에 2019년에 길리어드사이언스와도 NASH치료제 후보물질 2종 YHC1102와 YHC1108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7억8500만 달러에 체결한 바 있다. YH1131은 아직 후보물질 탐색 단계다.
LG화학도 'LG303174'와 'LG203003' 2개의 NASH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FDA로부터 지난 3월 'LG203003'의 글로벌 임상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대부분의 NASH 치료제들이 주사제나 1일 2회 복용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는 반면, LG203003은 1일 1회 경구 복용 방식이어서 복약 편의성이 높은 게 장점이다. 먼저 개발 중이던 'LG303174'는 미국 임상1상 마무리 단계이며, 올해 임상2상 진입을 계획 중이다.
SK케미칼‧일동제약 등 개발 전 연구 단계
SK케미칼과 일동제약은 아직 후보물질 도출 및 비임상 단계다. SK케미칼은 총 5개의 NASH 치료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 개발단계에 진입한 후보물질은 없다. SK케미칼은 올해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기업인 스탠다임과 NASH 후보물질에 대한 공동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임상2상 완료 후 기술이전을 검토할 계획이다.
일동제약은 NASH 후보물질 'ID11903'의 임상시험을 위해 독일의 에보텍(Evotec)과 2020년 협력을 맺고 비임상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동제약은 에보텍이 보유한 약물 연구 플랫폼 '인디고(INDiGO)'를 활용해 비임상 독성연구, 임상연구용 약물 제조, 관련 데이터 확보 등, ‘ID11903’의 임상 진입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임상1상 IND 승인을 계획하고 있다. ID11905는 현재 탐색연구 단계이며 오는 2023년 2분기 IND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에스티는 조인트벤처 레드엔비아를 설립해 당뇨병치료제인 '에보글립틴'(제품명 슈가논)을 NASH 치료제로 연구개발 중이다. 이밖에도 종근당과 삼일제약은 개발이 어려운 분야인 만큼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 중인 NASH 후보물질의 국내 판권을 확보하며 국내 시장을 선점할 준비태세를 갖췄다.
NASH 글로벌 시장 약 30조원…기술수출 등 기회의 시장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세계적으로 25%의 유병율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지방간과 달리 간의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돼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개발된 NASH 치료제는 없다. NASH 발병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치료 타깃 역시 뚜렷하지 않아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NASH는 당뇨병, 비만, 염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데 사람마다 달라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개발이 어려운 만큼 블루오션 시장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인 '글로벌 데이터'(Global Data)에 따르면 NASH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전 세계 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길리어드사이언스, 화이자, 샤이어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잇따라 개발에 실패할 만큼 개발이 어려운 분야로 꼽히지만 성공할 경우 그만큼 성공도 보장된 시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질환과 비교했을 때 개발이 특히 어렵긴 하지만 신약 개발 영역에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 분야"라며 "글로벌 제약사들의 개발 수요가 높은 만큼 기술수출 기회도 열려 있어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