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이 올 2분기 정제마진 약세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주력인 정유 사업에서 출혈이 컸다. 이들 4사의 정유 사업부문 적자 총액은 1조원대다.
다만 4사 모두 윤활유 사업부문이 실적을 방어했다. 유가 하락으로 원재료 절감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증권가는 정유업계가 올 2분기 바닥을 찍고 하반기 실적 개선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하반기에도 윤활유 수요가 증가할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공급이 줄면서 정제마진이 우상향 기조를 보일 것이란 진단이다.
경기둔화에 갇힌 '정유'…이동심리 덕 본 '윤활유'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는 각각 1068억원,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동기대비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와 HD현대오일뱅크는 각각 364억원, 36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7.8%, 97.4% 급감한 규모다.
주업인 정유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영향이 컸다. 경기 둔화로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해당 기간 정제마진이 약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락해 재고자산 평가 손실이 늘어난 것도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정유 사업 영업손실을 각사별로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이 4112억원 적자로 가장 컸고 에쓰오일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921억원, 2348억원, 965억원 손실을 냈다.
정유사들의 실적 부진은 사실상 예고된 바 있다. 지난 7월26일 대한석유협회는 올 상반기 정유 4사의 석유제품 수출액이 218억1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 약세에 따라 수출단가가 하락한 탓이다.
당시 석유협회는 “석유제품 수출단가에서 원유 도입단가를 뺀 ‘수출 채산성’도 글로벌 정제마진 악화에 따라 52% 가량 감소한 배럴당 11.4달러에 그친다”며 정유업계 상반기 경영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윤활유 사업은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 2분기 윤활유 사업부문에서 SK이노베이션은 2599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465억원, 1506억원, 61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높은 수익을 달성했다.
윤활유 사업 실적은 자동차와 항공 등 전방산업의 수요가 서서히 되살아난 2021년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는데, 이번 2분기엔 유가 하락이 원가 절감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마진 규모가 더 컸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정제마진, 하반기 10달러 강세 지속될 것”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정유업계 실적이 저조했지만 증권가는 “하반기 업황은 상반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반등이 시작된 정제마진이 하반기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해 6월 약 30달러까지 치솟았던 정제마진은 올해 2분기 저점을 찍고 지난 7월부터 다시 오르고 있다. 정제마진은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제품가격’에서 ‘원유가격’을 제했을 때 정유사들이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순익이다. 통상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앞서 올해 1월 월평균 10.3달러로 시작했던 정제마진은 4월 첫째 주 5.3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이후 △4월 둘째 주 3.9달러 △4월 셋째 주 2.5달러에 이어 4월 넷째 주엔 2.4달러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간 기준으로는 4월 말경 0.8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이후 정제마진은 5월 둘째 주부터 3.7달러로 소폭 상승해 4달러대 중후반을 꾸준히 이어가다 7월부터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7월 첫째 주 4.4달러였던 정제마진은 △7월 둘째 주 5.3달러 △7월 셋째 주 6.8달러 △7월 넷째 주 8.9달러로 올랐다. 8월 첫째 주엔 11.5달러를 찍으며 10달러대를 돌파했다. 상승 폭의 격차도 매주 벌어지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음에도 정제마진이 높게 나왔다는 것은 제품가격의 상승 폭이 유가 상승폭보다 더 컸다는 의미다. 제품에 대한 실제 수요가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전 세계 휘발유 수요의 약 34%를 차지하는 미국 내 수요가 늘어난 원인이 가장 크다”며 “6월부터 8월까지 드라이빙 시즌을 맞으면서 최근 미국 휘발유 재고가 9년 내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공장 가동률이 90% 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재고가 없다 보니 제품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여기에 항공 수요도 꽤 높아졌다”며 “휘발유를 비롯해 등유, 경유 등 이동용 연료가 수요 증가에 따라 정제마진이 회복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제마진은 반등은 수급이 구조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입증한다”며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 OPEC 플러스(OPEC+)의 감산 의지 등 구조적 현상에 기인한 공급증가 여력은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제마진은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10달러대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기반으로 증권가는 정유업계가 3분기부터 실적 개선 시동을 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는 SK이노베이션이 올해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으로 각각 5852억원, 7174억원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에쓰오일도 3분기 366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후 4분기엔 4575억원을 달성하며 수익성을 거듭 높일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