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전고체 배터리'를 두고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완성차 업계에서도 양산 시점을 구체화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지난 18일 닛산은 일본 요코하마 공장에 건설 중인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공개했습니다. 내년 3월부터 가동을 시작, 2028년부터 자체 개발한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도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12일엔 중국 광저우자동차그룹(GAC)이 전고체 배터리 상업화 시점으로 2026년을 언급했습니다. 업계 내 가장 빠른 목표 시점이어서 눈길이 더욱 집중됐죠.
뿐만 아니라 한국 삼성SDI·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일본 토요타, 중국 CATL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전고체 개발 각축전은 치열한 상황입니다.
현재 기준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토요타입니다. 1995년께 전고체 개발에 처음 뛰어들어 1000여개 이상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08년엔 차세대 배터리 연구소를 출범하며 정부·학계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대해 공식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고체 개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상당한 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했죠. 토요타가 전고체 양산목표 시점을 2022년에서 2027년으로 수차례 연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삼성SDI의 전고체 기술도 토요타와 견줄만한 수준으로 알려집니다. 삼성SDI 역시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했고 그해 6월 시제품을 생산, 하반기부터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대세는 '황화물계'…안전성·효율성 잡는다
전고체 배터리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에 있습니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는 전해질로 액체인 유기용매를 사용해 발화 위험요소가 항상 따라붙습니다. 온도 변화에 따라 배터리가 팽창하거나 외부 충격에 의해 불이 붙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불이 붙지 않는 '고체'를 전해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도가 매우 낮습니다. '전부 고체'라는 의미서 명칭에 '전(全)'이 붙습니다.
열과 압력 등 극한의 외부 조건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때문에 별도 냉각장치나 배터리 관리 시스템 기능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량의 경량화와 주행거리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죠.
다만 전해질이 고체로 바뀌면 이온 전달 과정서 불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전고체 개발에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이에 현재 각 기업은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작업 및 고체 전해질의 가공성 향상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체 전해질 성분에 따라 고분자계·산화물계·황화물계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요. 삼성SDI와 토요타 등 대부분 기업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황화물계'입니다. 습기에 예민해 노출 시 가스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온전도도와 계면 저항 특성이 고른 장점이 탁월하다는 평가입니다.
'만병통치약'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이러한 전고체 배터리를 바라보는 산·학·연의 시각은 다소 상이합니다. 개발 가능성 및 상용화 시점을 놓고 대립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선 업계는 목표 시점에 맞춰 전고체 개발 완료가 가능할 것이란 입장입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위한 업무는 차질없이 진행, 계획대로 2027년께 양산은 진행될 예정"이라고 강조했고요.
증권가 역시 긍정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2028년 무렵 대중화 단계에까지 이를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향후 아지로다이트(Argyrodite) 구조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2028년 아지로다이트 구조 관련 주요 특허가 만료되면 소재 원가가 킬로그램(kg)당 10달러 수준이 되기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 가격 하락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반면 학계와 연구계는 상용화 시점이 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상용화 단계서 관건은 배터리 가격이고, 가격이 하향조정되기 위해선 다수의 기업이 양산을 시작하고 약 5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일각선 시장에 판매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선 최장 10여년이 더 걸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됩니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계 관계자는 "기업이 제품을 양산하는 것을 넘어 일반 대중이 손쉽게 살 수 있어야 상용화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전고체 배터리에 사용되는 원료 중 황화리튬(Li2S)이 상당히 비싼데 소비자들이 살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내려오는 데까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술적 한계 등으로 지난 30여년간 실패가 계속된 리튬금속계 전고체 배터리는 앞으로도 한동안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고체 전지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경계하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