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올해 3분기 4000억원대 영업손실에 그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첫 분기 흑자를 내며 호실적을 달성했으나, 정유사업(석유)서 발생한 대규모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석유사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정제마진 하락 등 영향으로 SK이노베이션은 해당 부문에서만 6000억원대 손실을 봤다. 전분기에 이은 2개 분기 연속 적자다.
손익분기점 못 넘긴 정제마진에 풀썩
SK이노베이션이 올 3분기 매출은 17조6570억원, 영업손실 4233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2% 감소,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적자 폭은 전분기(영업손실 458억원) 보다도 3800억원 확대됐다.
주력인 석유사업의 부진 탓이 컸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및 중국 석유 수요 감소 등 영향으로 유가와 정제마진이 동반 하락하면서 이 부문에서만 영업손실 6166억원을 냈다.
업계에 따르면, 3분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평균 3.6달러선으로 파악된다. 통상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4~5달러를 하회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재고손실까지 발생했다. 계약 시점 대비 인도 시점 유가가 낮아지면서 석유제품 가격을 낮춰 판매해야 했다.
*정제마진은 정유사의 실적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제품가격에서 원유가격 등 제반 비용을 제했을 때 정유사들이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순익이다.
화학사업의 부진도 전사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 주요 제품 스프레드 하락에 따른 재고효과 등으로 영업손실 144억원을 기록, 적자 전환했다.
반면 배터리사업(SK온)에선 12분기만 호실적이 나왔다. SK온은 분사 후 3년여만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이 기간 SK온은 영업이익 24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AMPC 수혜 금액 608억원 및 일회성 비용 2100억원이 포함된 수치다.
AMPC를 제외하면 사실상 368억원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고단가 재고소진 △헝가리 신규 공장 초기 램프업 비용 감소 △전사적 원가 절감 활동 등을 통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 2분기 SK온은 AMPC 1119억원을 포함, 4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단순 계산 시, SK 배터리사업 수익성은 3개월만 5000억원 가량 개선된 것으로 진단된다.
"4Q 정제마진 회복, 수익성 개선 가능"
SK이노베이션은 오는 4분기엔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완화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정제마진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다.
고객사의 북미 공장 가동 및 신차 출시 계획 등으로 배터리 출하량도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신규 고객 수주 및 신규 폼팩터 확장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주요 고객사인 현대차그룹이 양산 계획을 공식화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관련 대응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날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 콜에서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당사는 현대차그룹의 주요 벤더 중 하나로서 현대차그룹의 하이브리드 확대 전략에 따른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포지셔닝을 확보할 것"이라며 "전기차 전반에 걸친 협력 관계에 기초해 이번 EREV형 배터리 대응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SK온은 4분기에도 지속적인 원가 구조 개선 활동을 이어간다. 같은 맥락서 투자금액을 유연하게 조정한다는 설명이다. 김경훈 SK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시설투자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블루오벌SK와 현대차 합작법인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가 연내 집행된다"며 "이에 내년 이후 시설투자 금액은 대폭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 "배터리 개선 일시적…본격 반등 내년부터"
증권가 내에선 "올해 4분기 이후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및 SK온-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SK엔텀 합병 효과를 기대해 볼 법하다"는 중론이 형성돼있다.
우선 SK온의 경우 올 4분기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이번 실적에 일회성 비용(고객사 보상금 2100억원)이 포함됐고, 전분기 대비 반 토막 난 AMPC가 출하량 저하를 뜻하는 만큼 호실적 기조는 제한적일 것이란 설명이다.
김도현 SK증권 연구원은 "SK온이 영업이익 240억원으로 흑자 전환을 기록한 것은 중국 공장 가동 연기에 따른 비용 축소 및 고객사 정산금 반영의 영향"이라며 "정산금 반영에도 불구하고 3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7.9% 하락, 출하량도 32%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 업황은 점진적인 회복이 전망되는 반면 SK온의 실적개선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폭스바겐과 포드의 전기차 생산 중단에 따른 영향으로 4분기 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이며, 향후 SK이노베이션의 실적 개선의 핵심은 결국 SK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최근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의 합병을 완료함에 따라 내년부터 SK온을 포함, 전사 재무안정성 및 수익성 모두 개선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일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의 합병을 완료했다. 아태지역 민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재탄생한 SK이노베이션은 강화된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재무안정성과 수익성을 확보해 미래 성장 동력을 유지할 계획이다. 합병 효과가 가시화되는 2027년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및 주주환원율 35% 이상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같은 날 SK온과 SKTI도 합병법인을 출범했다. 내년 2월 SK엔텀과의 합병까지 진행되면 3사 합병 절차는 마무리된다. 지난해 기준 SK트레이딩과 SK엔텀 영업이익으로 각각 5700억원, 500억원으로 확인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 4분기부터 SK E&S 실적이 연결로 반영. 연간 1조원 이상 영업이익 추가 기대된다"며 "SKTI는 연결기준 영업이익으로는 큰 의미 없으나, SK온과 합병 시 SK온 흑자 전환 가속화 요인으로 작용해 재무부담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도 "정유와 배터리 모두 저점은 통과했다"며 "합병 이후 불황기를 견딜 수 있는 이익 체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