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값싼 철강 제품 공세에 직면한 한국 철강업계에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에 최근 정치적 불안함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철강 보다 20% 싼 중국산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기재위)가 주최한 '계엄 쇼크, 한국 경제 긴급 진단'에서 철강업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철강 수출액은 전년 대비 6.5% 감소한 160억 달러(23조2128억원)를 기록했다. 가격은 톤당 10% 이상 하락했다. 중국산 철강은 가격이 톤당 500달러(72만5400원)로, 한국산 철강보다 20% 저렴하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한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올해 철강 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단가 하락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특히 중국발 저가 철강 제품의 무분별한 수출로 인해 국내 철강사들은 가격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코를 비롯한 주요 철강 기업들이 생산량을 조정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지만, 글로벌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쉽게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내 상황도 녹록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 따른 정치적 혼란은 철강업계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조 원장은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기업들이 계획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철강업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이 대외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철강업계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줄었다. 올해 3분기 기준 투자 규모는 3억 달러(4351억8000만원)로 전년동기대비 12% 감소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의 불안정성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새로운 규제 장벽 직면"
위기 속에서 주요 철강업체는 기술 혁신과 구조적 개혁을 통한 경쟁력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POSCO홀딩스)는 2030년까지 29조원을 투입해 '녹색 철강 생산'을 위한 기술 개발과 생산시설을 구축한다. 현대제철은 AI(인공지능)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올해 3000억~5000억원 수준의 회사채를 발행해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에 비해 10% 이상 감축하기 위해 2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시장 개척도 나섰다. 철강업계의 주요 시장인 유럽, 북미, 중국 외에도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으로 진출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철강 빅3 등은 아시아 시장에 약 3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투자대상은 생산 거점의 확장, 현지화된 생산 기술 개발, 친환경 기술의 적용 등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가격 경쟁을 넘어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국회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조 원장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국내 철강 업계는 새로운 규제 장벽에 직면했다"며 "철강사들은 친환경 기술 전환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종훈 지식경제연구소장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철강 업계의 신규 투자 결정이 보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업계는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 제시와 안정적인 경제 환경 조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액 공제 규모 1000억 추산"
국회는 철강업계를 살리기 위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와 함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친환경 기술 개발을 위한 세액 공제와 보조금 지급 등의 실질적인 지원도 논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세액 공제의 규모는 약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철강업체들이 저탄소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재정적 지원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천하람 의원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주요 경제 정책의 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산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고, 철강 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들이 안정적인 경영 환경 속에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