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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발전이냐 경쟁력이냐"…삼성·SK '호남 투자설' 놓고 갑론을박

  • 2026.06.12(금) 15:36

AI 반도체 호황에 호남·충청권 '투자설' 부상
전문가 "후공정 분산은 가능, 전공정은 신중해야"
인프라 강조한 최태원…"일본도 후보" 눈길

/그래픽=비즈워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충청권 투자설'이 확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능력 확대가 불가피한 가운데 그 해법을 지방 분산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어서다. 

첨단 패키징(후공정) 시설의 지방 신설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HBM 시대일수록 전공정·후공정·연구개발(R&D) 기능을 한데 모으는 집적화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역균형발전'과 '반도체 초격차' 사이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것이 과제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호남행 반도체' 인재도 따라갈까

12일 정부 및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거점을 호남·충청권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다각도로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는 "정해진 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달 말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를 계기로 관련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주목받는 곳은 호남권이다. 삼성전자가 광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충남 온양캠퍼스를 패키징 거점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HBM(고대역폭메모리)과 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징은 완성된 반도체 칩을 연결·조립하는 후공정 단계다. 과거에는 전공정에 비해 중요도가 낮게 평가됐지만 HBM과 칩렛 기술이 확산되면서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충북 청주에 19조원을 투입해 첨단 패키징 팹(P&T7)을 건설 중인 만큼 추가 투자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국민과 국토가 성장의 기회와 혜택을 고루 누리는 초격차 산업 강국으로 나아가겠다"며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 공개를 예고한 점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전문가들은 패키징 공장의 지방 신설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전공정까지 분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집적 효과가 경쟁력의 핵심인 전공정을 무리하게 지방으로 옮길 경우 용인 메가클러스터 전략을 흔들고 국가 반도체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첨단 전공정의 지방 이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첨단 팹 운영에는 대규모 전력과 공업용수는 물론 연구개발 인력, 소재·부품·장비 기업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산업은 평택·화성·용인·이천·청주를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구축돼 있으며 핵심 인력과 협력업체 역시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국내 패키징 산업은 그동안 베트남 등 해외 생산기지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일부 생산시설의 지방 이전이 국가 경쟁력에 반드시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광주에 세계적인 패키징 기업인 엠코 생산시설이 있어 후공정 생태계와의 연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단장은 "전력과 용수 여건도 양호하고 재생에너지 활용이 가능해 RE100 대응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면서도 "생산시설은 지방에 둘 수 있지만 연구개발(R&D) 기능은 수도권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 결국 우수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도 "전공정과 후공정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패키징 시설이 수도권 밖에 위치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패키징 공장이 들어선다면 본딩 장비업체 등 관련 협력사도 함께 자리 잡아 후공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은 인력"이라며 "지역 대학과 연계한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덧붙였다.

정치 논리와 산업 논리 사이

반면 첨단 패키징 시대일수록 집적화의 가치가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 분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경쟁력만 놓고 보면 전공정·후공정·연구개발(R&D) 기능을 한곳에 모아두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호남권 투자는 수도권에 집중된 생산시설의 지정학적·자연재해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반도체는 속도가 경쟁력인 산업인 만큼 웨이퍼 생산과 패키징 거점이 멀어질 경우 물류 비용과 리드타임 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HBM처럼 전공정과 후공정 간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제품은 물리적 거리 자체가 수율 관리와 생산 효율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산업 경쟁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대만·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은 기업이 원하는 지역에 인프라와 세제 혜택을 집중하며 반도체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입지 선택 역시 산업 경쟁력과 사업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지방 투자를 추진하더라도 수도권의 집적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김 교수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부가 기업의 지방 투자를 유도하려면 세제 혜택·보조금·인재 확보 방안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이천과 청주 사이 물류 이동도 적지 않은데 호남까지 확대하면 물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수도권에서도 반도체 인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방 근무 기피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배우자 직장·자녀 교육·정주 여건 등을 고려하면 지방 근무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차기 반도체 생산 거점 후보지로 '일본'을 공개 거론하며 "전력·땅·사람·물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호남권 투자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서 나온 발언으로, 신규 반도체 공장은 생산 효율성과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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