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증시 상승과 함께 주목받던 성장주가 기로에 놓였다. 대개 금리 상승기에는 가치주가 부각되는 만큼 한동안 주춤했던 가치주에 대한 관심이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하반기 들어서는 가치주가 상승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국내의 경우 미국과 달리 당장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은데다 성장주와 가치주 간 위험지표나 밸류에이션 차이가 이미 좁아지면서 당장 가치주로의 관심 전환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 금리상승기에 가치주 주목
대개 금리 하락기에는 성장주에, 금리 상승기에는 가치주로 관심이 이동한다. 금리가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 프리미엄이 붙는 반면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가 할인되면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강세장에서는 성장주의 상승 탄력이 훨씬 높고, 약세장에서 가치주들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주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성장주보다 가치주의 성과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저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되며 성장주가 꾸준히 고평가돼 온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미국의 성장형 주식펀드의 자산 규모는 가치형 대비 1.8배로 2009년 이후 최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재만 연구원은 "제로 정책금리로 인해 성장주로의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진행됐다는 증거 중 하나"라며 "정책금리 인상으로 '제로금리'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 가치주로의 포트폴리오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가치주=대형주'
가치주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은 한동안 부진했던 대형주로 시장 관심이 이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형주의 이익하향 추세가 이어지면서 상당수 대형주들이 가치주 성향을 띄어왔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대형주에 대한 불신으로 2012년 이후 대형주의 상대적 약세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도 "성장주 강세의 본질은 이익성장에 있다"며 "최근 성장주의 이익추정치 하향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안도랠리는 가치주와 대형주가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단, 대형주 내에서도 수출주보다는 내수주가 유망하다는 판단이다.
▲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성장주 베타와 가치추 베타 추이(출처:SK증권) |
◇ 성장주·가치주 간 베타값 축소 변수
성장주 랠리 종료에 의문을 제시하는 쪽도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성장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될 전망이고, 당장 국내에서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됐다고 보기 힘들다.
금리 외의 다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SK증권은 금리 외에 저성장 국면에서 소수 기성장기업이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점이나 가치주와 성장주의 베타(주식이나 포트폴리오 위험을 나타내는 상대적 지표) 갭 축소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진혁 SK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금리와 가치주 상대수익률이 동행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며 업종 비중이 다른 점에 주목했다. 또 통상 성장주의 베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대표적 가치주인 조선과 건설, 자동차 업종이 구조적 저성장 우려로 순환적인 폭락을 겪으면서 가치주와 성장주 간 베타 차이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양해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극단적으로 확대된 성장과 가치의 밸류에이션 갭이 줄어들고 있다"며 "쏠림이 완화되면서 가치주로 관심이 이동하겠지만 소위 성장주도 낙폭과대에 따른 투자 매력이 확보되면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성장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는 투자로 인해 현금흐름이 개선되는 종목군을 가리는 것이 옥석을 가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