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錦岡)’. 굳이 풀이하자면 ‘비단 같은 언덕’쯤 되겠다.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 회장 일가가 경영했던 기업들에는 이 이름이 상당수 붙어있는데, 금강여행사도 그 중 하나다. 1981년 만들어진 이 금강여행사에서 독자적인 기업가의 길을 걸었던 강 회장의 차남이자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손위처남 강흥구 현 (사)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의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강 이사장의 근래의 사회적 활동 반경에서 보면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강 이사장이 현재 적(籍)을 두고 있는 태평양시대위는 김동길(88) 전 연세대 교수가 1991년 11월 창립한 시민단체다. 1991년 교단을 떠난 직후 ‘깃발론’을 내걸고 정치 일선에 뛰어든 김 전 교수 주도로 제14대 대선(1992년 12월)을 앞두고 결성된 까닭에 당시 정치권에서 꽤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통일을 주제로 한 포럼 및 대학생토론대회, 인문학교실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강 이사장은 현 명예이사장인 김 전 교수의 뒤를 이어 2012년 2월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경기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강흥구 이사장은 부친이 경영하는 삼보증권에 한 때 몸담았다. 이후 삼보증권이 팔린 뒤로는 1987년부터 금강여행사의 대표를 맡았다. 당시 금강여행사에는 형 강완구 현 일동여행사 회장이 감사로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금강여행사는 강흥구 사장이 김복동 당시 국민당 최고위원의 첫째사위라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한마디로 흠잡을 틈 없이 잘 나갔다. 패키지여행상품인 ‘금강홀리데이’를 주축으로 농협 인센티브단체등 기관의 단체관광 물량을 확보해 단기간 급속 성장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강원도 원주에서 석회석 광산개발 사업을 하던 원성실업과 석회질 비료 등을 생산하는 금강산업을 경영했던 것도 이 무렵이다.
돌풍은 지속성이 없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긴 해도 일시적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힌다. 과정이 어쨌든, 여행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듯 했던 금강여행사는 얼마가지 않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 멈춰 섰다.
옛 서울신탁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9억8000만원의 이자를 갚지 못해 1992년 12월 적색거래업체로 지정되는 등 불황에 시달렸다. 1992년 9월 말 재무제표를 보더라도 총자산 29억7500만원인 금강여행사는 계속된 적자로 9억7000만원의 결손금이 쌓여 있었다. 자본금은 14억7000만원인데 반해 자기자본은 4억9950만원에 불과, 66.1% 자본잠식에 빠졌다.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던 금강여행사는 1996년 12월 최종 해산하며 마침내 수건을 던졌다.
이 무렵 강흥구 사장이 경영하는 여타 계열사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금강산업은 값싼 중국산 비료가 들어오면서 타격을 받았다. 원성실업의 경우도 1994년 12월에 가서 간판을 내리는 등 이후로는 쉽사리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금강여행사가 부실해진데는 계열사들의 자금 압박도 한 요인이었다. 현재 박용만 회장 처갓집의 활동 기반이 되고 있는 일동여행사는 이렇듯 서울교통공사, 금강여행사를 거쳐 제2의 가업이 업그레이드된 ‘3.0 버전’이다. [방계家 사람들 ‘일동여행사’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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