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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컬처]日드라마 '료마전'과 전범기업 미쓰비시

  • 2019.08.01(목) 17:25

미쓰비시 창업주 야타로 일생 다뤄
시대 앞섰지만 후대에서 한계 봉착

드라마, 영화, 뮤지컬, 도서, 동영상 콘텐츠 등 문화 속 다양한 경제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콘텐츠 속에 나오는 경제 현상이 현실에도 실제 존재하는지, 어떤 원리가 숨어있는지 궁금하셨죠. 쉽고 재미있게 풀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일본 정부와 강 대강 국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양국 간 외교장관회담도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하고 있고 우리나라 정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일본 국내 매체 대다수는 문제의 시발점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미쓰비시 중공업 자산 압류 명령에 있다고 봅니다. 미쓰비시는 일본의 국민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기업이기도 한데요. 일본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범기업으로 알려진 미쓰비시. 양국의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번 [머니&컬처]에서는 2010년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龍馬伝)'을 통해 그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드라마 <료마전>은 총 47부작으로 제작됐습니다. 일본의 간판급 배우들의 열연으로 붐을 타기 시작해 방영 당시 일본 전역에 료마붐이 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해서 물건을 파는 게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장사에 필요한 것은 돈을 모으는 능력뿐. 신분 따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모노에 양복 재킷을 걸친 한 사내가 분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내전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총 9000정을 수입해 놓고 낌새가 이상해지면 팔아치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신분이 낮아 생각에 품격이 없다는 지적을 받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때는 19세기 후반. 당시 일본은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의 침입에 느슨해진 중앙 권력을 노리는 지방 영주들로 혼란스러웠습니다. 혼란 속에 기회가 있다고 본 젊은 무사들은 기존 질서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사키 야타로(1835~1885, 카가와 테루유키 분)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야타로는 하급무사 출신으로, 상급무사 뒤치다꺼리로 평생을 살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뒤집어질 판국인데 신분이 무슨 소용입니까. 야타로는 고민 끝에 장사꾼으로 살아남기로 했습니다.

야타로는 세속적 가치에 찌들지 않고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잘 적응해나갑니다. 사카모토 료마(1836~1867, 후쿠야마 마사히로 분) 영향으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료마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이루는 데 기여한 인물입니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던 남부 지역 영주를 하나로 묶어 도쿠가와 막부가 권력을 천황에 헌납하도록 압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천황 중심 국가로 재편했고 이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야타로는 료마가 조직한 해운회사의 재정을 봐주는가 하면 여러 곳에서 자금을 융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 속 조역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까닭입니다.

야타로가 산전수전을 견디며 일궈낸 기업체가 바로 미쓰비시입니다. 미쓰비시는 이후 거대 재벌로 성장해 일본 산업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도 살아남아 지금도 일본 경제 1세대 기업으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료마전' 속 이와사키 야타로(카가와 테루유키 분)/출처=NHK
드라마 '료마전' /출처=NHK
"앞으로 일본은 뒤집어질 것이다. 신분의 위아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패자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각오를 다잡고 장사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후 20세기 들어 일본은 여러 사회 변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을 침략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미쓰비시는 군수 물자를 대고 강제 징용을 실시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미쓰비시가 일본 문호 개방에 기여한 것은 공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이 미쓰비시라는 이름으로 전쟁 범죄에 가담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들이 씻을 수 없는 우를 범한 것은 자기 국가와 민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시대의 한계에 매몰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 군인으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해 재판장에 선 인물입니다.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강변했습니다. 아이히만은 명예로운 군인으로 이름을 남기기는커녕 범죄자로 낙인찍혀 후대에 전해집니다.

아시아 지역은 정치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소중한 외교 자산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나카 아키히코 동경대 교수는 그의 저서 <아시아 속의 일본>에서 "아시아 각국과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일본에 있어 소중한 외교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야타로가 19세기 일본에서 신분제가 폐지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부당한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20세기 초를 살았다면 미쓰비시는 오명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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